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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6월 12일 주일오전예배_악한 말과 비방, 그리고 거절

 

 

 

악한 말과 비방, 그리고 거절

 

생명교회 김태완 목사

 

 

 

요삼 1:9 내가 두어 자를 교회에 썼으나 그들 중에 으뜸되기를 좋아하는 디오드레베가 우리를 맞아들이지 아니하니

1:10 그러므로 내가 가면 그 행한 일을 잊지 아니하리라 그가 악한 말로 우리를 비방하고도 오히려 부족하여 형제들을 맞아들이지도 아니하고 맞아들이고자 하는 자를 금하여 교회에서 내쫓는도다

1:11 사랑하는 자여 악한 것을 본받지 말고 선한 것을 본받으라 선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고 악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을 뵈옵지 못하였느니라

1:12 데메드리오는 뭇 사람에게도, 진리에게서도 증거를 받았으매 우리도 증언하노니 너는 우리의 증언이 참된 줄을 아느니라

1:13 내가 네게 쓸 것이 많으나 먹과 붓으로 쓰기를 원하지 아니하고

1:14 속히 보기를 바라노니 또한 우리가 대면하여 말하리라

1:15 평강이 네게 있을지어다 여러 친구가 네게 문안하느니라 너는 친구들의 이름을 들어 문안하라

 

 

사랑하는 형제, 자매님들 안녕하십니까?

한 주간 어떻게 사셨습니까?

주님 안에서 평안하셨기를 소망합니다.

지난주에 김미영 전도사님이 사임을 하셨습니다.

교회로서 큰 손실이었습니다.

제 개인적으로도 김미영 전도사님이랑 풍성한 열매를 맺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많습니다.

마음이 좋지 않았고, 슬펐고, 아팠습니다. 그런 마음이 오래 갔습니다.

인간관계 어렵습니다.

그러나 주께서 서로 사랑하라 하셨기 때문에 어려워도 우리들은 서로 사랑하며 가야 하는 길입니다.

관계의 어려움을 다시 한 번 경험하면서 앞으로 이런 실수들을 반복하지 않아야 하겠다란 결심을 해 봤습니다.

역량부족을 느꼈습니다.

인간관계를 잘 맺어야 하겠다란 생각을 다시 하면서 이 영역을 개발해 나가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인간관계 뿐만 아니라 믿음의 영역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믿음은 결국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각자가 하나님 앞에 나가고 믿음을 성장시키시길 기원합니다.

 

오늘 본문을 악한 말과 비방, 그리고 거절이라는 제목으로 증언합니다.

 

가이오는 진리를 가지고 있고, 진리 안에서 행하고, 신실한 자이며, 사랑을 행하는 자이고 하나님께 합당한 자였습니다.

교회에 이런 사람은 정말 필요한 사람이고 기둥 같은 사람입니다. 교회에 가이오 같은 사람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교회에는 가이오같은 사람만 있지 않습니다. 오늘 보게될 디오드레베는 교회에 해악을 끼치는 사람입니다.

 

디오드레베의 특징은 이렇습니다.

으뜸되기를 좋아하는 자, 거절하는 자, 악한 말로 비방하는 자, 금하고 내쫓는 자

 

으뜸되기를 좋아하는 자

디오드레베는 권력욕이 있었습니다. 그는 스스로 일인자 자리에 앉기를 좋아하는 디오드레베였습니다(잭맨, 292-93). 그는 교회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교만과 자만으로 눈이 멀어진 것입니다(바톤 외, 233).

오늘날 교회는 으뜸되기를 좋아하는 자를 경계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날 한 사람 혹은 한 가문의 수중에 좌지우지되는 교회들이 버젓이 존재합니다(잭맨, 295). “교회에서 최고 자리에 앉을 수 있을 수 있는 분은 오직 한 분이며, 그분은 바로 교회의 머리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잭맨, 295). 이것을 우리 개신교는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지도자가 되고자 하는 디오드레베의 욕망은, 다음 세기들에 교회를 지배한 바로 그 욕망의 전조였습니다(바톤 외, 233). “이전에는 장로들의 그룹이 돌보던 교회들이 하나씩 한 사람의 지도자에게 인계되었습니다(바톤 외, 233). “이것이 결국 주교와, 추기경, 교황이라는 총체적인 제도를 낳았습니다(바톤 외, 233).

 

장로의 영적 권위를 부정하는 자

디오드레베는 장로의 영적 권위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바톤 외, 234).

장로는 가이오에게 편지하기 전에 이미 다른 편지를 써서 디오드레베가 있는 교회에 보냈습니다(조병수, 278).

그런데 디오드레베는 그 편지를 무시하고 순회선교사들을 맞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디오드레베의 이런 태도는 장로의 선교정책에 동의하지 않았음을 알게 합니다(조병수, 279).

오늘날 개신교는 개교회 현상이 뚜렸합니다. 종교개혁 전통에 의한 것입니다. 그러나 개신교 교단을 중심으로 개교회는 총회와 노회의 권위를 인정하면서 영적 권위를 서로 인정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생명교회는 한국독립교회선교단체연합회 소속입니다. 그래서 개교회 권리가 강합니다. 그러나 한국독립교회선교단체연합회의 운영규정을 준수하고 회원 교회간 영적 권위를 존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개교회간 자매교회로 서로 교제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쉽지 않습니다. 회원 교회와 선교단체를 다 알지 못하고 교제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쉽지 않지만 교제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생명교회가 교제하는 교회들과는 긴밀한 관계로 들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돌이키는교회’, ‘사랑이넘치는교회’, ‘서정장로교회’, ‘세상의빛교회’, ‘세종말씀교회’, ‘수원염광교회’, ‘주님께속한교회’, ‘하나된교회’, ‘하늘영광장로교회’, ‘이경원ㆍ오영숙 선교사님 사역등과 영적 권위를 인정하고 서로 교제를 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생명교회는 개교회중심으로 사역을 펼치지 않고 연합된 교회로 사역을 펼쳐 나갈 것입니다.

 

악한 말로 비방하는 자

디오드레베는 권력욕을 통해 으뜸이 되고자 했기 때문에 장로의 영적 권위를 무시하고 급기야 악한 말로 비방을 하였습니다.

말은 사람과의 관계를 단절시킵니다. 디오드레베는 교제를 끊었는데 그 수단으로 악한 말로 비방한 것입니다.

본문에서 비방은 현재 분사 ϕλυαρϖν(플뤼아론)’으로 원형 ϕλυαρέω(플뤼아레오)’는 본래 물이 거품을 일으키며 끓어오르는 모습을 나타내는 단어 ϕλω(플뤼오)’에서 유래한 단어로써, ‘무의미하고 허튼 소리를 하다’, ‘쓸데없는 소리를 하다’, ‘헌된 비난을 하다라는 의미입니다(제자원, 676).

교회에 이런 비방하는 자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들은 거짓을 말하고 근거없는 소문을 만들어내며, 정치적 목적으로 자신에게 유리한 권력을 얻으려고 상대의 영적 권위를 무시하고 왜곡시켜 힘을 잃게 만들어 버립니다.

교회가 이런 악을 용납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교회사를 두루 살펴보면 디오드레베의 뒤를 잇는 자들이 늘 있었으며, 오늘날에도 그 같은 부류의 사람들이 전혀 사라지지 않고 있습니다(잭맨, 294). “너무나 많은 회중이 비열하고 인색한 폭군 같은 사람들의 손아귀에 사로잡혀 있어서, 이런 안타가운 현상이 비정상적인 것임을 분간할 수도 없을 정도입니다(잭맨, 294). “공동체의 일체성을 파괴하고, 권위를 과시하며,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제멋대로 규칙을 제정하고, 자신을 반대하는 자들에 대해 유언비어와 거짓말을 남발하며, 내통했다는 죄를 뒤집어씌워 다른 그리스도인들을 내어쫓는 등 그의 행적에 대한 목록은 끔찍합니다(잭맨, 294-95). 오늘날 교회에 이런 지도자들이 있습니다. 이런 유의 사람들은 교회를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생각하고, 교회를 통해 군림하고 자신의 이익을 챙기는 자들입니다.

 

금하고 내쫓는 자

디오드레베는 자신이 순회선교사들을 맞이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환대하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환대를 금할 뿐 아니라 결국에는 그들을 내어쫓아 버립니다. 이렇듯 디오드레베는 선한 일을 하려는 사람들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권력을 사용하여 이들을 제거해 버립니다. 디오드레베는 폭군처럼 행동합니다. 결국 이런 교회는 잘못된 리더십으로 인해 교회는 냉랭해질 것이고 활력을 잃을 것입니다. 이런 교회에서는 성경적인 다원적 리더십도 있을 수 없을뿐더러, 새롭거나 혁신적인 생각들이 들어설 자리도 없고, 미래 지향적인 운동이나 영적 성장도 사실상 일어날 수 없습니다(잭맨, 296).

오늘날 교회가 이런 독재자를 용납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이를 예방하기 위해서 장로제도를 잘 활용하고 활성화할 책임이 교회에 있습니다.

 

오늘날 교만과 시기, 비방 같은 죄들은 교회에 존재할 수 있습니다(바톤 외, 235). “만일 어떤 지도자가 죄를 장려하고 옳은 행동을 단념시키려 한다면, 반드시 그를 제지해야합니다(바톤 외, 235). 교회는 이런 악에 침묵해서는 안 됩니다. “만일 아무도 소리 높여 말하지 않는다면, 교회에 커다란 해가 미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바톤 외, 235). “요한은 전체 교회 앞에서 디오드레베의 잘못을 공개적으로 폭로할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바톤 외, 235). 우리들이 교회에 독재자가 있을 때 싸우는 방법은 요한이 그랬던 것처럼 교회에 이런 죄를 폭로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교회 내의 죄에 맞서 싸워야합니다(바톤 외, 235).

 

이런 디오드레베를 향해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는지에 대해 사도는 가이오에게 편지합니다.
사랑하는 자여 악한 것을 본받지 말고 선한 것을 본받으라 선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고 악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을 뵈옵지 못하였느니라

사도의 이런 접근은 오늘 우리들에게 매우 훌륭한 모범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들이 사도의 이런 온화함과 단호함을 본받아야 할 것입니다(잭맨, 296).

오늘날 우리들은 우리들이 어떤 행동을 할 것인가란 질문에 사도의 가르침을 새기고 따라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님들 악한 것을 본받지 마십시오. 그런 것들을 쳐다보지도 말고 부러워하지도 마십시오. 그런 것들은 절대 우리들이 부러워할 대상이 아닙니다.

그리고 선한 것을 본 받으십시오. 우리들이 따를 것은 선한 것입니다.

선을 행하는 사람은 하나님께 속하였습니다. 그리고 악을 행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뵈옵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고 알지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서슴치 않고 악을 행할 수 있는 이유입니다. 하나님을 알고 만나 사람은 악을 행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심판이 있고, 천국과 지옥이 있으며, 악을 행하는 사람들이 갈 곳은 볼 못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모르기 때문에 악에 대범한 것입니다.

 

장로는 편지를 통해 데메드리오를 소개합니다.

사도행전에서 바울을 대적한 에베소의 은장색 데메드리오를 언급하고 있지만(19:24), 이 사람은 아마 다른 사람일 것입니다(바톤 외, 236).

데메드리오에 대해서는 정확히 누구인지 알지 못하지만 이런 추측을 해 볼 수 있습니다(제자원, 678).

1. 바울의 동역자였던 데마일 수 있습니다(4:14). ‘데마데메드리오의 단축형입니다.

2. 디오드레베와 같은 교회 교인으로 그와 대조되는 사람일 수 있습니다. 이 경우 데메드리오는 순회선교사들을 대접하다가 디오드레베에 의해 교회에서 쫓겨난 사람일 수 있습니다.

3. 에베소 교인으로 본서를 가지고 가이오에게로 가서 요한의 메시지를 전한 사람으로 볼 수 있습니다.

 

데메드리오는 이런 평가를 받습니다.

뭇 사람에게 증거를 받은 자, 진리에서 증거를 받은 자, 사도 요한 공동체가 증언하는 자

 

뭇 사람에게 증거를 받은 자

데메드리오는 모든 사람에게 좋은 평을 받았습니다(새번역성경). 본문에서 증거를 받았으매는 새번역에서는 좋은 평을 받다, 우리말성경은 인정을 받다, 현대인의성경은 칭찬을 받다등으로 번역합니다.

모든 교인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는 것은 데메드리오의 신앙의 모습을 잘 대변해 준 것입니다.

우리들도 이런 평가를 서로 받길 소망합니다.

 

진리에서 증거를 받은 자

데메드리오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진리에 있어서도 좋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바른성경은 진리 그 자체에 의해서 인정을 받았고라고 합니다. 데메드리오는 진리 그 자체에 의해서도 인정받은 사람입니다.

본문에서 진리에서를 브루스는 인격적인 존재로 이해하여 주 예수 그리스도로 해석합니다(잭맨, 298). 다른 이해로 플루머는 진리의 성령으로 해석합니다(잭맨, 298). 이런 해석들은 가능하다고 생각하면서 바른성경이 번역한 것처럼 진리 그 자체로 이해하는 것도 좋은 해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데메드리오가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에 따라서 살았으며, 그 결과 그 진리의 척도로 그를 평가했을 때 진리 그 자체가 그의 성품을 확증했다는 것으로 이해하면 되겠습니다(잭맨, 299).

 

사도 요한 공동체가 증언하는 자

데메드리오에 대해 사도 요한도 인정을 했습니다. 그리고 사도 요한의 동역자들도 인정한다고 편지에 장로는 쓰고 있습니다. 장로가 편지에 우리도라고 쓰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데메드리오는 사도 요한이 추천할 수 있는 인물입니다.

우리들의 신앙이 영적 권위자에게 인정받고 추천받길 기원합니다.

 

이어서 사도 요한은 가이오에게 이렇게 편지 합니다.

내가 네게 쓸 것이 많으나 먹과 붓으로 쓰기를 원하지 아니하고

우리들은 만남에 있어서 편지와 sns 등 여러 도구를 활용할 수는 있지만,

사도 요한이 언급한 것같이 대면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대면하는 것은 인격과 인격이 직접적으로 만나는 것이기 때문에 중요합니다.

얼굴을 대면하지 않으면 우리들은 익명성의 모습을 가지고 있을 수 있기 때문에 가식적이고 위선적으로 만남이 진행될 수 있기 때문에 얼굴을 대면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성경은 그래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10:25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사도는 가이오에게 보내는 편지를 이렇게 마칩니다.

평강이 네게 있을지어다 여러 친구가 네게 문안하느니라 너는 친구들의 이름을 들어 문안하라

우리들에게 평강은 항상 필요합니다.

디오드레베가 교회에서 권력을 사용하여 사역들을 막고 있을 때 평강이 깨질 수 있습니다. 이때 평강은 절실할 것입니다. 우리들의 사역에서도 늘 평강이 있길 기원합니다.

그리고 문안은 서로의 교제를 위해 필요합니다. 각 개인의 문안을 장로는 요구합니다.

우리들의 문안이 각 개인 개인에게 있길 또한 소망합니다.

 

 

참고문헌

 

제자원. 옥스퍼드 원어성경대전 야고보서․․요한서신유다서. 제자원 편. 서울: 제자원, 2006.

조병수. “요삼 1: 가이오와 형제들을 향한 권면”. 요한일삼서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개정판]. 목회와신학 편집 부편. 서울: 두란노아카데미, 2009: 269-85.

Barton, Bruce B., Osborne, Grant R., Veerman, David R. 1, 2, 3 John. LABC. Tyndale House Publishers, 1998. 전광규 옮김. LAB 주석 시리즈 요한123. 서울: ()한국성서유니온선교회, 2007.

Jackman, David. The Message of the John’s Letters : Living in the love of God. 김일우 옮김. BST시리즈 요한서 신 강해 :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는 삶. 서울: IVP, 2003.

설교자 김태완 목사
설교일 20220612
본문 요삼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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