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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2월 5일 주일오전예배_살인에 대한 예수 그리스도의 재해석

 

 

 

살인에 대한 예수 그리스도의 재해석

 

생명교회 김태완 목사

 

 

 

5:21 옛 사람에게 말한 바 살인하지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5:22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5:23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5:24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5:25 너를 고발하는 자와 함께 길에 있을 때에 급히 사화하라 그 고발하는 자가 너를 재판관에게 내어 주고 재판관이 옥리에게 내어 주어 옥에 가둘까 염려하라

5:26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한 푼이라도 남김이 없이 다 갚기 전에는 결코 거기서 나오지 못하리라

 

사랑하는 형제, 자매님들 안녕하십니까?

한 주간 어떻게 사셨습니까?

성남에서 모녀가 생활고로 죽은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70대 어머니와 40대 딸이 늘 빚에 시달리고 생활이 어려워져서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2장 짜리 유서가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폐를 끼쳐...미안합니다라고 했습니다.

40대 딸이 의류장사를 했는데 많게는 200만원, 적게는 50만원을 벌었다고 합니다.

차상위계층입니다.

생활이 어렵고 빚은 늘어갔지만 공과금은 밀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위기가구로도 분류되지 않았습니다.

전국적으로 차상위계층은 319천가구라고 합니다.

선진국에 진입은 했지만 여전히 어려움에 노출된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사회에 그리고 이웃에게 관심을 가져야 할 영역이라고 생각합니다.

https://youtu.be/RVIBtfI5u5A

 

 

오늘 본문을 살인에 대한 예수 그리스도의 재해석이라는 제목으로 증언하고 선포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율법 성취’(5:17)더 나은 의’(5:20)의 예시로 마 5:21-48에서 여섯 대립 명제를 통해 언급하고 있습니다(제자원, 384). 그 여섯 가지는 살인’, ‘간음’, ‘이혼’, ‘맹세’, ‘복수’, ‘사랑에 관한 것입니다(정훈택, 178).

 

첫 예시는 살인에 대한 것입니다.

본문 21절에 옛 사람에게 말한 바는 모세가 이스라엘의 옛 사람에게 이 계명들을 전했는데(바톤 외, 156), 이 말을 들은 사람들은 모세 율법을 연상했을 것입니다(제자원, 384). 이에 대해 후대 율법 학자들(서기관들)의 구전을 지칭한 것으로 이해하는 사람도 있습니다(리델보스, 168). 리델보스는 옛 사람들은 모세와 그후 하나님의 율법을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선포한 그의 후계자들로 보는 해석은 예수께서 오신 것이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려는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라고 하신 17절과 모순된다고 보고 있습니다(리델보스, 168).

 

옛 사람에게 말한바를 모세 오경으로 보면서 그 율법을 이해하는 것을 함축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적절한 이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모세 오경은 하나님께서 주신 계시이기 때문에 그 말씀 자체의 문제가 아니고 그 말씀을 이해하는 것에 문제가 있다고 봐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 오류를 바로 잡는 차원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세 율법을 재해석하신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적절할 것 같습니다. 이렇듯 예수 그리스도는 율법의 오용을 바로 잡으신 것입니다(바톤 외, 155).

 

예수 그리스도는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라고 말씀하시면서 서기관의 전통을 배척하시고, 구약 원리의 권위를 재확인하시며, 그것이 함축하고 있는 의미에 대해 언급하시면서 놀라운 권위로 살인 등 여섯 가지 예에 대해 재해석하셨습니다(그린, 122). 이 표현은 그 누구와도 견줄 수 없는 예수의 권위를 나타냅니다(헤그너, 246). “예수께서는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주신 외형적이며 방편적인 성격이 강한 율법을 보다 내면화ㆍ절대화시킴으로써 율법의 수준을 고양시키셨습니다(제자원, 384).

 

살인하지 말라’(5:21)는 십계명 중 제6계명으로 출애굽기 20:13과 신명기 5:17을 인용한 것입니다(양용의, 108). 그리고 살인하는 자는 누구든지 심판을 받을 것이다’(5:21)는 출애굽기 21:12과 레위기 24:17 등을 요약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양용의, 108).

 

예수 그리스도는 살인죄에 대해 재해석하시면서 삼중 반복 대구점층법적 구조를 사용하시면서 동일한 사안을 삼중으로 중복시켜 강조하십니다(제자원, 386). “22절의 삼중적인 경고는 각각 구별되는 죄의 삼 단계를 지적하는 것이 아닙니다(리델보스, 170). “이들은 모든 동등한 심판을 받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리델보스, 170). 이에 대해 주께서 점점 악한 행위를 언급하시면서도(분노-욕설-경멸) 점점 큰 대가를 결합하심으로(심판-공회-지옥 불) 잘못된 행위와 처벌의 대조를 극대화하신 것으로 이해하는 견해도 있습니다(정훈택, 178).

 

예수 그리스도는 율법의 살인에 대해 말하면서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라고 하신 이유는 살인의 근원은 분노이고 원리상으로는 살인이라고 해석하신 것입니다(카슨, 188-89). 여기서 분노는 그리스도인 형제ㆍ자매에게 신랄한 격분을 품는 것을 의미합니다(바톤 외, 157). 이러한 분노살인에까지 이를 수 있는 위험한 감정입니다(바톤 외, 157). 그러나 이 심판은 세상의 법정에서는 살인이 일어나지 않은 상태에서 그 내면을 다루지 않기 때문에 그 심판은 하나님의 심판입니다(카슨, 189).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분노를 그래서 우리들의 삶에서 다뤄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분노는 우리 그리스도인 삶에서 빈번하게 일어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은 차를 운전하다가 분노가 올라올 수 있습니다. 사람들과 대화 하다가 분노가 치밀어 올라올 수 있습니다. 우리들의 삶의 현장에서 분노는 항상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엡 4:26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라고 분에 대해 경고하고 있습니다. 4:26은 분은 사람에게서 일어날 수 있는 감정이지만 이 감정을 절제하여 죄를 짓지 말것과 분을 오랫동안 품고 있지 말라고 권면합니다. 이렇게 분은 절제 되어야합니다.

 

성경에서 이 분노를 절제하지 못하여 동생을 죽인 가인이 있습니다.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4:3). 그런데 아벨의 제사는 하나님께서 받으셨으나, 가인의 제사는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셨습니다(4:4-5). 이에 가인은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했습니다(4:5).

이것에 대해 하나님께 가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찌 됨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찌 됨이냐”(4:6).

그러시면서 분을 절제하실 것에 대해 말씀하셧습니다.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4:7). 가인은 이후 아벨에게 말하였고 들에서 아벨을 쳐죽였습니다(4:8). 가인은 분노를 절제하지 못하고 결국 아벨을 죽인 것입니다.

 

주께서 제시한 분노의 기준은 이후의 말씀하신 형제에 대하여 라가라고 말하는 것과 미련한 놈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5:22). ‘라가(ρακά)’우둔한’, ‘어리석은’, ‘멍청한의미의 아람어 레카를 음역한 것입니다(카슨, 189). 그리고 모레모로스(μωρός)’의 호격입니다(제자원, 388). ‘모로스는 히브리어 모레(מרה)’를 연상시키는데 이 말은 도덕적 배신, 반란, 악이라는 의미입니다(카슨, 189). ‘라가모레어느 것이 모욕적인 말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비슷한 내용의 욕설입니다(헤그너, 247).

 

주님은 이렇게 욕설은 상대방에 대한 증오심을 드러내 보여주기 때문에 살인에 해당한다고 제자들에게 선언하셨습니다(양용의, 108). 우리들은 욕설이 왜 살인으로 취급되는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본문을 통해 우리들은 분노와 결부된 욕설은 미움과 연결되고 상대방을 무시하고 경멸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인간존재에 대한 무시와 경멸은 하나님을 향한 죄로 연결될 수 있습니다(바톤 외, 156).

 

지옥 불은 히브리어 게힌놈(גיחנם, 힌놈의 골짜기)’에서 나온 것입니다(카슨, 189). 힌놈의 골짜기는 예루살렘 남쪽에 있는 데, 이곳은 이방신 몰렉에게 아이들을 불에 태워 제물로 바쳤던 곳입니다(참조. 왕하 23:10; 대하 28:3; 7:31; 32:35)[바톤 외, 157]. 몰렉은 왕을 의미하는 말렉의 음역에서 유래한 말이고 너희 왕주신 우상을 가리키는 것으로 암몬 사람들이 민족신으로 섬기던 우상입니다(가스펠서브, 316). 몰렉 우상의 모습은 인간의 몸을 근간으로 황소의 머리를 하고 두 팔을 벌리고 있는 형상입니다(가스펠서브, 316). “일명 밀곰’(Milcom, 왕상 11:5), ‘몰록’(Moloch, 왕상 11:7; 7:43), ‘말감’(Malcom, 49:1)”으로 불려졌습니다(가스펠서브, 316). “솔로몬 때에 결혼 동맹으로 인해 들어온 이방 여인들을 통해 유입된 몰렉 우상은 이스라엘을 오염시켯고, 예루살렘 근처 힌놈의 골짜기에 그 제단이 설치되기도 했습니다(왕상 11:5, 7)[가스펠서브, 316]. 요시야왕이 몰렉에게 제사하는 의식을 폐지할 때 오물과 죄인의 시체를 버리는 곳으로 만들어서 더러운 곳이 되게 하였습니다(카슨, 189). “이 골짜기는 종말론적인 심판이 행해지는 장소를 상징하게 되었습니다(10:28, 23:15; 18:9)[카슨, 189].

 

예수 그리스도는 살인에 대해 재해석하시면서 다음의 두 가지 예를 들어 말씀하십니다.

 

하나는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났을 때 취할 행동이고 다른 하나는 고발하는 사람과 함께 길에 있을 때 취할 행동입니다.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그 자리를 떠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입니다. 왜냐하면 제사를 중단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제사를 드리는 것보다 형제와 화해하는 것이 먼저라는 것을 분명히 하셨습니다. “형제와의 관계가 정상화되었을 때에라야 하나님께 대한 그의 제사는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것을 본문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는 제사의 본질에 대해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 가르침은 제자들이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행동을 했을 때 제자들은 자신의 행동에 대해 바로 잡으려는 적극적인 태도를 가져야 한다는 것을 말합니다(양용의, 108). 이렇게 형제와 화목하는 것이 막 시작되는 제사 행위를 완수하는 것보다 훨씬 더 긴급히 필요로 하는 행위인 것입니다(리델보스, 172).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는 형제와의 화해가 제사보다 긴박하다고 강조하시고 계십니다.

 

사랑하는 형제ㆍ자매님들, 우리들이 형제와 자매들에게 분노했을 때, 그리고 이것이 분노이고 형제와 자매들에게 원망들을 만하다는 것을 알았을 때 지체하지 말고 화해하길 소망합니다. 분을 쌓아두지 말고 용서를 구하고 화해합시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고발하는 사람과 길에 있을 때 급히 화해해야 할 것입니다. 급히 화해하지 않으면 고발하는 사람이 재판관에게 내어 주고 재판관이 옥리에게 내어 주어 감옥에 갇힐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주께서 말씀하신 것은 사람과의 관계에서 다툼을 버리고 화해의 길로 가라는 것입니다. 급히 화해하지 않으면 결국 한 푼이라도 남김이 없이 다 갚기 전에는 결코 거기서 나오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코드란테스(κοδράντης)’는 당시 노동자의 하루 품삯의 1/60 정도에 해당하는 화페단위(12:42)입니다.

로마법 하에서, 원고는 피고와 함께 법정에 갔다. 길을 가는 도중에 어떤 방법으로든지 사화(私和)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일단 법적인 평결이 내려지면 사화는 중단되었다“(바톤 외, 160). 이것은 현실에서 일어날 때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취할 행동입니다. 소송으로 해결하려고 하지 말고 우선 화해하는 길을 선택해야 합니다. 그리고 넓은 관점에서, 이 구절들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 심판을 받기 전에 형제 자매들과 관계를 바르게 할 것을 조언합니다(바톤 외, 160).

 

두 가지 예 중에 하나는 제사와 관련된 종교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고 다른 하나는 재판과 관련된 사회적인 성격을 기자고 있습니다(제자원, 391). ‘노하거나 욕하는 것종교적인 측면에서도 금지되어야 하고 사회적인 측면에서도 금지되어야 한다는 교훈이 있습니다(제자원, 391). 그리고 노하거나 욕했을 때’ ‘종교적으로, 그리고 사회적으로 취할 행동은 상대방과 급히 화해하는 것입니다. 이렇듯 악의에 찬 분노는 매우 악한 것이고 하나님의 심판이 분명히 있을 것이기 때문에(22) 우리는 분노를 종식시키기 위해서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여야 하는 것”(4:26-27 참조)입니다(카슨, 190).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주께서 말씀하신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나은 의를 추구하는데, 그 중하는 분노를 다스리는 것입니다. ‘분노는 일어날 수 있지만 죄를 짓지않는 절제가 훈련되어야 하고 해가 지도록 품지 말아야하는 훈련이 우리들 삶 속에서 계속되어야 합니다. 이것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사랑이 깊어지고 용서가 넓어지는 믿음의 성장을 통해 분노의 절제가 점점 더 확장될 것입니다. ‘사랑과 용서를 통해 우리들의 삶 속에서 분노가 점점 사라지길 기원합니다. 아멘.

 

 

참고문헌

 

가스펠서브. 라이프 성경사전. 가스펠서브 편. 서울: 생명의말씀사, 2006. 4, 2008.

양용의. 마태복음 어떻게 읽을 것인가. 서울: 한국성서유니온선교회, 2005. 3, 2008.

제자원. 옥스퍼드 원어성경대전 마태복음 제1-11a. 제자원 편. 서울: 제자원, 2006.

정훈택. “5~7: 세례 요한의 사역과 시험 받으시는 예수”. 마태복음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 목회와신학 편집팀 . 서울: 두란노아카데미, 2003: 167-195.

Barton, Bruce B., Fackler, Mark., Taylor, Linda K., Veerman, David R. Matthew. 바톤 외. 전광규ㆍ김진선 옮김. LAB 주석 시리즈 마태복음. 서울: ()한국성서유니온선교회,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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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een, Michael. The Message of Matthew: The Kingdom of Heaven. BST. 김장복 옮김. BST시리즈 마태복음 강 : 천국의 도래. 서울: IVP, 2005.

Hagner, Donald A. Matthew 1-13. WBC. Nashville: Thomas Nelson Publishers, 1998, 채천석 옮김. 마태복음 (). 서울: 도서출판 솔로몬, 2009.

Ridderbos, Herman N. Het Evangelie naar Mattheüs I. 오광만 옮김. 마태복음 (). 서울: 여수룬, 1990. 5, 1999.

설교자 김태완 목사
설교일 20230205
본문 마 5: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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