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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2월 4일 주일오전예배_온유한 사람들

 

 

방송이 오작동으로 중단되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생명교회 김태완 목사

 

 

 

5:5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사랑하는 형제, 자매님들 안녕하십니까?

한 주간 평안하셨습니까?

화물연대파업업무개시명령으로 정부와 화물연대가 서로 충돌하고 있습니다.

업무개시명령은 향후 나라에서 사라져야 할 악법이라고 생각합니다.

후진적인 접근이고 헌법의 노동권과 직업의 자유 등에 저촉될 가능성이 매우 높은 법제도입니다.

우리나라가 이제 선진국에 진입했기 때문에 제도도 선진적으로 변할 필요가 있습니다.

법이라고 모두 괜찮다는 접근은 아주 위험한 생각입니다.

법이 악법일 수도 있고 단계적으로 더 나은 제도로 나아가야할 단계에 있는 법들도 아주 많기 때문입니다.

자본주의에 살고 있는 우리나라는 기업만 위한 나라여서는 안되고 오히려 약자들을 끌어올리는데 국가가 힘써야 할 것입니다. 이런 제도와 법의 발전은 서로 함께 살아가고 인간으로 존중받으며 살자는 헌법 정신에서 점진적으로 발전해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선진국으로 진입했으면 선진국 다운 면모를 보여야 할 것입니다.

화물연대파업은 안전운임제 일몰제가 쟁점입니다. 안전운임제는 2022년까지 한지적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안전운임제를 법으로 보장해 달라는 것과 안전운임제 전면 도입이 화물연대의 요구입니다. 국가는 이런 것을 방임하지 말고 잘 조율하여 적용하는 방향으로 나가는 것이 좋겠다는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왜냐하면 화물운송자들은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단체교섭권이 없기 때문에 법제도를 통해 권익이 보장되기 때문에 이런 안전운임제를 우리나라에서 한시적으로 적용하여 보완하려는 취지었기 때문에 할 수만 있다면 화물운송자들의 권익을 보장하는 단계로 나가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종합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해야 하겠죠. 적정선에서 타협되어 좋은 결과가 나오길 기대합니다.

https://www.fnnews.com/news/202212031509306052

http://worknworld.kctu.org/news/articleView.html?idxno=501405

https://youtu.be/TlnD-bvljzI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122760

 

 

오늘 본문을 온유한 사람들이라는 제목으로 증언하고 선포합니다.

 

본문은 온유한 자는 복이 있다고 합니다.

 

온유한 자에 해당하는 원어 프라에이스의 원형 프라우스(πραύς)’는 정의하기가 힘든 말로, 일반적으로 온화하고 부드러운 것’(11:29; 3:13)을 가리키고 또한 그에 따르는 자제심을 포함합니다(카슨, 173). ‘프라우스70인역에는 19회 나오고 신약 성경에도 예수님의 품성과 성도의 상태를 묘사하는 단어로 단지 3회만 사용(5:5; 21:5; 벧전 3:4)되었습니다(제자원, 325). 70인역에 나오는 19회의 용례는 가난한(poor)’, ‘괴로움을 당하는(afflicted)’, ‘겸손한(humble)’, ‘온유한(meek)’이란 뜻을 가진 히브리어 아니(עני)’에서 유래한 아나우(ענו)’의 번역어로 쓰였습니다(제자원, 325). “히브리어 아니아나우는 억눌리고 속임을 당하고 착취를 당하나 이에 무방비인 무력한 사람을 묘사하는 데 주로 사용”(9,10) 되었습니다(제자원, 325). 이런 온유한 자하나님께 겸손히 의존”(37:9)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양용의, 93). ‘온유한에 해당하는 원어 프라에이스(πραεις)’라는 단어는 아나윔(ענוים)’을 번역한 헬라어 단어로, 70인역 이사야 61:1에서는 이 히브리어 단어가 프토코이(πτωχοί-가난한)’로 번역되었습니다(헤그너, 215). 이것은 셋째 복과 첫째 복이 거의 비슷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헤그너, 215). 이렇게 온유한 사람들은 이사야 61:1-2에서 약속된 종말론적 약속을 고대하는 사람들입니다(양용의, 93).

 

본문에서 (텐 겐)’은 원래 이스라엘 땅, 즉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맺으신 언약으로 인해 이스라엘에게 약속된 땅을 가리키는 말입니다(헤그너, 215). “그러나 메시아적 통치의 성취를 다루는 현 문맥에서는 새로워진 땅/유업을 지칭하는 것”(참조. 19:27-29)을 의미합니다(양용의, 94). 온유한 사람들이 이 새 땅을 기업으로 받을 때는 하나님 나라가 완성될 때입니다(양용의, 94). “바울의 입장에서 보면 신자들은 그리스도에 속하고 있기 때문에 원리상으로는 현재 모든 것을 소유하고 있다고 할 수 있지만(고후 6:10) 마태가 지적하는 것은 우리의 관심이 세상이 새롭게될 때를 향해야 한다는 것”(19:28)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칼빈은 본문 주석에서 이것은 해()를 당한다고 쉽사리 성질을 부리지 않으며, 마음이 상한다고 뾰루퉁해 하지 않으며, 악을 악으로 되갚기 보다는 모든 것을 인내하려는 마음의 자세를 갖춘, 침착하고 차분한 사람들을 뜻한다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칼빈, 248). 아리스토텔레스는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온유한 사람은 동요하지 않는 경향이 있고 격정에 이끌려서가 아닌 이성의 지시로 그것들에서 허용된 방법 안에서 그리고 허용된 시간 동안 화내는 경향이 있다라고 말합니다(아리스토텔레스, 73). 로이드 존스는 온유함을 다른 사람들에 대한 우리의 태도에 적용했습니다(카슨, 173). “온유함은 우리 자신에 대한 올바른 자각이 다른 사람에 대한 자세로 표현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카슨, 173).

 

온유한 사람들의 성경적 의미는 본문의 온유와 관련된 히브리어 단어 아니아나우의 의미와 이 단어의 성경적 의미를 통해 규정해 가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아니아나우물질적으로 가난하고 억압받는 사람이란 일차적 의미에서 더 나아가 고난과 핍박 속에서도 겸손하고 여호와의 도움을 바라며 여호와의 뜻대로 사는 사람이란 의미로 사용”(40:18; 41:17; 2:3) 되었습니다(제자원, 325-26). ‘온유한 사람들억압 중에서도 겸손한 자세를 잃지 않는 사람들, 하지만 곧 하나님으로부터 정당한 보상을 받게 될 사람들입니다(헤그너, 215). 이런 사람들에게는 오직 하나님 외에는 의지할 곳이 없습니다(헤그너, 215).

 

성경에서 온유한 사람들을 대표하는 사람은 모세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모세는 40세에 혈기가 왕성하여 자기 동족 히브리인을 치는 애굽인을 쳐 죽였습니다(2:11-12). 이 일이 탄로되어 바로가 모세를 죽이려고 하자 바로의 낯을 피하여 미디안 땅에서 40년 동안 살면서 하나님께 연단을 받았습니다(2:15-3:10).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한다는 인정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았습니다(12:1-16). 모세는 하나님께로부터 내 온 집에 충성함이라라는 인정을 받았습니다(12:7). 이것은 온유함과 하나님께 충성함이 밀접하게 연결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이끌어내면서 바로를 상대한 것과 출애굽과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평을 대하는 모세의 태도는 하나님을 찾았고 기도했고 거룩한 분노를 했으며, 자신이 하나님께 여쭈어보지 않고 직접적으로 바로와 이스라엘 백성들을 대하지 않았습니다. 이를 통해 볼 때 하나님께 충성하는 것과 온유가 맞물려 돌아가는 구조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모세가 딱 한 번 실수를 하는데, ‘므리바 물사건에서 하나님께서는 반석에게 명령하라고 하셨는데 모세는 반석을 지팡이로 두 번 친 것이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20:2-13). 이 사건은 온유한 사람도 계속된 불평에 하나님 말씀을 어기고 혈기로 반응할 수 있음을 잘 보여줍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에 오신 목적을 성취하시기 위해 아버지 하나님께 충성했습니다. 그 구속사역을 완성하기 위해서 천국복음을 전파하셨고 가르치셨고 병을 고치시고 귀신을 쫓아내시는데 열심이셨습니다(4:17-25). 예수 그리스도를 죽이려는 사람들을 향해 그분은 그 자리를 피하셨습니다(4:16-30). 예수 그리스도는 욕을 당하시되 맞대어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당하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이이에 부탁하셨습니다(벧전 2:23). 로이드 존스가 온유함을 사람들에 대한 태도에 적용했는데,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사람을 향한 태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온유는 거룩한 분노를 분명히 나타내셨다는 것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참조. 2:13-17; 23:1-39). 온유는 일반적으로 자제심을 가지면서 부드럽고 온화한 것을 의미하지만 그것에는 거룩한 분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온유는 성령의 열매 중 하나입니다(5:23).

온유는 성령의 열매로 하나님의 성품에 해당합니다. 이것은 한 순간에 이룰 수 있는 성품이 아니고 모세의 경우를 비춰볼 때 오랜 연단을 통해 얻어지는 성품입니다. 이것은 분노를 절제하는 것과 관련된 것입니다. 그리고 본문에서 말하는 온유한 사람들은 핵심적으로 심령이 가난한 사람들과 관련이 깊고, 또한 하나님께 충성하고 오직 모든 경우에 하나님만 바라보고 그분께 모든 맡기고 그분의 뜻대로 살려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충성하며, 그분의 뜻대로 살려는 일상의 모습이 반복적으로 훈련되어 모세가 온유한 사람이 되었듯이 우리들이 온유한 사람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이 변화의 과정에서 핵심은 하나님께 충성이고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는 것과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는 삶입니다. 이 삶이 반복될 때 온유가 형성되어질 것입니다. 온유에서 우리들이 강하게 직면하는 것은 분노입니다. 우리들에게는 분노가 있습니다. 분노를 다스리는 것은 정말 어렵습니다. 그래서 이 분노를 다스리는 것은 오랜 시간 훈련이 필요합니다. 모세는 분노를 다스리기 위해(물론 분노를 다스리기 위한 훈련만은 아니었겠지만) 40년이란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모세를 통해 볼 때, ‘분노를 다스리는 방법은 자신을 내려놓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자기가 무엇인가를 주도적으로 하려는 것은 분노를 일으킬 수 있는 동력도 함께 갖고 갈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철저히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의 방법대로, 하나님께 영광 드리는 삶으로 나아갈 때 분노는 다스려 질 것입니다. 이런 반복된 삶이 계속될 때 온유한 사람이 되어져 갈 것입니다. 그리고 분노를 다스리는 원동력은 사랑입니다. ‘사랑허다한 죄를 덮기 때문에’ (벧전 4:8)그 대상을 용서하고 그를 향해 분노하지 않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온유한 사람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약속받았듯이,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소유할 것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가 그들과 함께 하시기 때문에 이미 천국을 소유했다면, 온유한 사람들도 이미 천국을 소유한 것이지만 그것이 완전히 이뤄지는 것은 장차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통해 하나님 나라가 완성될 때에 그들은 천국을 소유할 것입니다. 또한 그리스도인들이 복음을 전파할 때 온유한 사람들로 전파해야 천국을 확장시킬 수 있다는 의미를 함께 본문은 포함하고 있습니다. 복음은 강압적으로 전파하고 확장시킬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오직 사람들이 복음을 듣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메시야로 구원자로 인정하고 믿는 것이기 때문에, 이는 온유한 마음으로 그들을 대할 때 가능할 것입니다. “사랑은 온유하며라고 말하고 있습니다(고전 13:4). 사랑하는 자 온유한 자가 될 것입니다. 사랑은 성내지 아니하며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고전 13:5).

 

온유한 사람들은 이런 모습을 보일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위치를 깨달으며(5:3), 동료들 앞에서 그것을 삶으로 나타내기를 즐거워합니다(바톤 외, 135). “그들은 자신을 경멸하지 않으며, 또한 자신을 지나치게 귀히 여기지도 않습니다(바톤 외, 135). 그리고 황금률을 실천할 것입니다(바톤 외, 135). 상대를 존중하고 사랑으로 대할 것입니다.

 

성경은 노하기를 더디하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노하기를 속히하는 자는 어리석은 일을 행하기 때문입니다(14:17).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라고 성경은 말합니다(4:26). 분을 내면 죄를 지을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우리들은 일상에서 을 자주 내곤 합니다. 사람에 따라 그 빈도 수는 다를 것입니다. 우리들의 지향점은 분노를 누그러뜨리는 작업을 지혜롭게 하여 분노하지 않는 것입니다. ‘분노를 다루는 기술적인 방법은 분이 맹렬히 일어날 때 멈추고’, ‘그 자리를 떠나고’, ‘잠깐 휴식을 갖는 것입니다. 대략 이 시간이 30~3분 정도면 분노가 진정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강북삼성병원). 우리들이 분노할 때가 있는데, 그것은 거룩한 분노입니다. 그것 외에 우리들은 분노하지 않는 삶을 목표로 세울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온유한 사람들이 되어 하나님께 충성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여 을 받고 땅을 기업으로 받길 기원합니다.

 

 

참고문헌

 

강북삼성병원. “사소한 일에도 버럭! 화를 다스리는 방법”. 행복건강이야기.

https://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27186574&memberNo=7131400&vType=VERTICAL. 2022.12.04.접속.

양용의. 마태복음 어떻게 읽을 것인가. 서울: 한국성서유니온선교회, 2005. 3, 2008.

제자원. 옥스퍼드 원어성경대전 마태복음 제1-11a. 제자원 편. 서울: 제자원, 2006.

Aristotle. The Nicomachean Ethics. Translated by David Ross. Oxford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1980. This edition, 2009.

Barton, Bruce B., Fackler, Mark., Taylor, Linda K., Veerman, David R. Matthew. 바톤 외. 전광규ㆍ김진선 옮김. LAB 주석 시리즈 마태복음. 서울: ()한국성서유니온선교회, 2009.

Calvin, John. 한국기독교선교백주년기념 존ㆍ칼빈. 성경주석출판위원회 역편. 존ㆍ칼빈 원저 신약성경주석 : 1권 공관복 Ⅰ』. 서울: 신교출판사, 1978.

Carson, D. A. Wessel, Walter W. Liefeld, Walter L. Matthew, Mark, Luke. EBC. Zondervan, 1984, 엑스포지 터스 성경 연구 주석 :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서울: 기독지혜사, 1985.

Hagner, Donald A. Matthew 1-13. WBC. Nashville: Thomas Nelson Publishers, 1998, 채천석 옮김. 마태복음 (). 서울: 도서출판 솔로몬, 2009.

 

설교자 김태완 목사
설교일 2022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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