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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5월 15일 주일오전예배_자신을 지켜 우상을 멀리하자

 

 

 

정정: 설교 중에 천주교회가 설립된 때를 1884년으로 언급했는데, 1784년입니다. 정약용, 정약전, 이승훈 등의 스승은 권철신입니다. 이승훈이 베이징 천주교당 북당에서 영세를 받고 와서 영세를 준 사람을 권철신, 정약용, 정약전, 이벽 등으로 언급했는데, 이승훈은 17849월경에 이벽과 권일신에게 세례를 베풀었습니다(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74). 이때 정약용도 세례를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두산백과, 이벽). 권철신은 나중에 세례를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두산백과, 권철신). 이승훈이 정약용의 매제라고 했는데, 매형입니다. 1791년 제사를 지내지 않아 순교한 인물로 윤치중으로 언급했는데, 윤지충을 잘못 말했습니다. 그 외에 세부적인 부분에서 역사적으로 조금 다를 수도 있습니다. 역사책들도 조금씩 달리 표현하고 있기 때문에 세부적으로 오류가 있을 수 있다는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자신을 지켜 우상을 멀리하자

 

생명교회 김태완 목사

 

 

 

요일 5:18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는 다 범죄하지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부터 나신 자가 그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그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

5:19 또 아는 것은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고 온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처한 것이며

5:20 또 아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러 우리에게 지각을 주사 우리로 참된 자를 알게 하신 것과 또한 우리가 참된 자 곧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니 그는 참 하나님이시요 영생이시라

5:21 자녀들아 너희 자신을 지켜 우상에게서 멀리하라

 

 

사랑하는 형제, 자매님들 안녕하십니까?

한 주 어떻게 지내셨습니까?

사랑하는 형제, 자매님들의 인간관계는 평안하십니까?

누군가는 편하고 좋을 것입니다. 그러나 누군가는 불편하고 싫을 수 있습니다.

우리들의 관계는 여러 가지 이유로 좋고 싫고, 편하고 불편하고 등 감정을 동반하게 됩니다.

인간관계는 풀리지 않는 문제일 수 있습니다. 우리들이 죽어야 끝날 문제일 가능성이 큽니다.

그래서 인간관계로 감정이 상하고 신경적 긴장이 계속될 수 있습니다. 이것들을 잘 관리하지 않으면 결국 삶이 무너지고 병이 되기도 합니다.

쉽지 않은 인간관계를 하나의 과정으로 이해하시고 사람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시고 자신을 사랑하고 남을 사랑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데 까지 이르는 우리들 되길 기원합니다.

4:13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오늘 본문을 자신을 지켜 우상을 멀리하자라는 제목으로 증언합니다.

 

사도 요한은 모든 불의가 죄로되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도 있도다라고 하면서 누구든지 형제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 범하는 것을 보거든 구하라 그리하면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범죄자들을 위하여 그에게 생명을 주시리라라고 교회에 편지 하였습니다.

 

사도 요한이 말한 것처럼 죄에는 사망에 이르는 죄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가 있다는 것을 살펴봤습니다.

사망에 이르는 죄는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성령 훼방 죄가 있습니다. 이 죄는 결국 성령을 무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죄입니다. 성령께서 감동으로 범죄한 것을 회개케 인도하심에도 불구하고 이를 무시하고 완강하게 거절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적그리스도의 영을 따라 하나님을 대적하고 그리스도인들을 미혹하고 박해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사도 요한은 교회에 편지합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는 다 범죄하지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사도 요한의 이 말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그리스도인들은 범죄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현실은 우리들이 매일 죄를 짓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다면 본문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죄를 전혀 짓지 않는다는 의미는 아닐 것입니다. 물론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려고 애씁니다. 그러나 죄성을 통해 죄를 짓기도 합니다. 그러나 반복적으로 습관적으로 죄를 의도적으로 짓지 않습니다. 죄를 짓고 그리스도인들은 죄로 인해 괴로워하며 가슴을 치고 죄를 고백하며 회개합니다.

 

본문에서 말하는 범죄는 사망에 이르는 범죄’, ‘회개를 통해 용서받지 못하는 범죄를 의미합니다(제자원, 611). 그리스도인들은 연약하여 죄를 지을 수 있으나, ‘사망에 이르는 범죄는 짓지 않습니다(이필찬, 250). 본문은 이것을 의미합니다.

 

사도 요한은 이어서 편지합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나신 자가 그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그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

본문에서 하나님께로부터 나신 자를 그리스도인들로 볼 수도 있고 예수 그리스도로 볼 수 있습니다. 이 두 가지 독법 중에서 하나님의 아들로 보는 독법을 많은 주석들이 찬성하는 이유에 대해 LAB 주석은 이렇게 설명합니다(바톤 외, 186).

 

(1) 이 구절의 전반절이 이미 하나님에게서 난 신자들을 언급하고 있다(“those who have become part of God’s family”NLT). (2) 하나님의 아들이 된 신자를 나타내기 위해 요한은 일관되게 완료 시제를 사용하는데(2:29; 3:9; 4:7; 5:1; 5:4; 5:18a), 반면 여기서는 부정과거가 사용되고 있다. (3) 신자들이 자신을 안전하게 지켜야 한다는 사실에는 안전성이 거의, 혹은 전혀 없다. 오히려 신자들을 안전하게 지키시는 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본문에 대해 옥스퍼드원어성경대전도 이렇게 주해하고 있습니다(제자원, 611)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는 누구인가? 이에 해당하는 호 겐네데이스 에크 투 데우는 상반절의 하나님께로서 난 자에 해당하는 호 게겐네메노스 에크 투 데우와 시제만 다를 뿐 동일한 표현이다. 그리고 상반절의 그 표현은 성도를 지칭하는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그와 동일한 표현인 본문의 그것 역시 성도를 가리킨다고 하는 견해가 있다. 즉 표준 원문(Textus Receptus)과 시내 사본(א), Aͨ, ψ 사본 등은 본문의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성도로 보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 사본은 본문의 목적어 아우톤대신에 헤아우톤(ἑαυτόν)’을 필사해 놓았다. 이 단어를 취하면, 본문은 하나님께로서 난 자가 자기 자신을 지킨다(KJV, he that is begotten of God keepetheth himself)’라는 의미가 되어 결국 호 겐네데이스 에크 투 데우성도가 된다. 그러나 이러한 필사본의 표현은 타당성이 부족하다. 성도가 자기 자신을 악한 자로부터 안전하게 지킬 수 있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헤아우톤이 아닌 아우톤이 기록되어 있는 사본, USB³판과 및 벌게이트(Vulgate) 역본 등을 따라 본문을 하나님께로서 나신 그리스도께서 성도를 지키신다라는 의미로 보아야 한다. NASB는 본문을 ‘He who was born of God keeps him’으로 번역했는데, 여기의 대문자로 시작된 ‘He’그리스도를 지칭하고 있음은 불문가지이다.

 

그리고 BST도 본문을 아들 성자로 주장하면서 NEB저를 지키시는 분은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시다로 번역하고 있다고 예를 들고 있습니다(잭맨, 249). 앞에서 살펴본 이유를 통해 본문에서 언급한 하나님께로부터 나신 자는 예수 그리스도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사도 요한이 편지한 하나님께로부터 나신 자가 그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그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를 통해 우리들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지켜주시고 사탄과 악한 사력들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만지지도 못하게 하시기 때문에 사망에 이르는 죄를 짓지 않을 수 있게 됩니다(제자원, 612).

 

사도 요한은 교회에 이어서 편지합니다.

또 아는 것은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고 온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처한 것이며

우리들이 본문을 통해 이 세계와 우주, 그리고 인간에 대해 알아야 할 것은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 속해 있고, 온 세상은 악한 자에게 속해 있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은 지금 악한 자의 손아귀에 있습니다(잭맨, 249).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속해 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사탄의 권세에서 해방되었습니다(바톤 외, 187).

 

10:28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10:29 그들을 주신 내 아버지는 만물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10:30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신대

 

우리들은 예수 그리스도께 속해 있고, 그분이 우리들을 지켜 주시기 때문에 우리들은 사탄의 세력권에서 해방되었음을 정확히, 그리고 명확히 인식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을 정확히 알 때 사탄은 우리를 속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탄에게 속해 있다는 것이 왜 중요하냐면, 이것 때문에 세상이 지혜롭고 위대하고 존경할 만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조차도 사탄의 세력 범위에 놓여 있습니다(바톤 외, 187). 그래서 우리들이 볼 때 위대하고 존경할 만한 사람들이 인류 사회에 있는데, 그들 조차도 사탄의 세력을 벗어나지 못해 구원받지 못하는 것을 목격하기 때문에 안타까움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최근에 죽음을 맞이한 강수연씨에 대한 유튜브를 몇 개 봤는데, 한결 같이 그녀의 의로움과 한국 영화계의 발전에 힘쓴 것에 대한 칭찬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그녀가 생전에 했던 말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는 영화 베테랑에서 서도철 형사로 나온 황정민의 대사로 활용되어 유명합니다. 한국 여배우 중 최초의 월드스타란 명예를 받았지만 그녀도 갑작스런 죽음을 피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불교신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중간 지대는 없다. 하나님께 속하여 그분께 순종하거나 사탄의 지배 아래 살거나 둘 중 하나다”(바퇴 외, 186). 그리스도인의 눈으로 볼 때 강수연씨는 사탄의 영향권에 속해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시선으로 볼 때 그녀의 삶은 훌륭했고, 사람에 대한 따스한 눈길이 있었고, 돈에 휘둘리지 않고 가오를 가지고 살았습니다. 강수연씨의 죽음에 인간적인 슬픔과 안타까움을 갖습니다.

 

강수연씨에 대한 시선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힘들게 하고 혼란스럽게 할 것입니다. 사탄과 하나님과의 선택에 서 있는 인간으로서 교차되는 감정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란 질문에 그리스도인들은 혼란스럽고 힘들기 때문입니다.

 

사도 요한의 편지를 계속 보면서 이 부분을 설명하고자 합니다.

또 아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러 우리에게 지각을 주사 우리로 참된 자를 알게 하신 것과 또한 우리가 참된 자 곧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니 그는 참 하나님이시요 영생이시라

이것은 인생의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것입니다. 이 질문에 대한 답들이 철학일 것입니다. 그리고 현실적인 실천이 역사일 것입니다. 누구는 지각을 하나님의 아들을 통해 받게 되어 하나님을 알게 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지만 누구는 이 지각을 받지 못하여 인간적으로 뛰어난 학자가 되고 인물이 되었지만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았습니다. 이 지각에 이르러 우리들은 큰 슬픔에 빠집니다. 왜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여 그분을 믿지 않아 멸망을 당하는가?

 

~비통하도다!

 

이것에 대해 LAB 주석은 19절 주해를 하면서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바톤 외, 187).

 

이 구절은 일찍이 사도 바울이 가르친 진리를 반향하고 있다. 즉 하나님께서는 당분간 사탄이 이 세대에 대해 상당한 권위를 행사하도록(고후 4:4) 허용하셨다는 것이다. 이것은 그리스도인이 믿는 바에 대해 이 세상이 공감하지 않는다는 것이 분명하다는 것과, 또 영적인 문제에 관해서라면 세상이 중립적이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고의로든 아니든, 그리스도를 영화롭게 하기를 구하지 않는 모든 상황이나 정치 제도나 철학은 틀림없이 악한 자를 이롭게 하는 일을 하는 것이다. 그들은 다함께 악한 자의 지배 아래 있으며, 그 결과로 세상은 신자들에게 적대적인 장소가 된다. 당신이 적의 영토에 살고 있다는 것을 깨달으라. 영적인 전쟁이 당신 주변의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다. 대단한 일이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그 근원이 사탄에게 있는 세속적인 태도나 행위들에 참여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사도 요한은 이제 요한일서를 마치면서 교회에게 이렇게 당부합니다.

자녀들아 너희 자신을 지켜 우상에게서 멀리하라

사도 요한은 마치는 말로 우상을 멀리하라고 교회에 권면합니다. 그가 이것을 마지막에 언급한 것은 그가 편지를 쓴 것과 직결되고 꼭 하고 싶은 말이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는 그당시 에베소 교회를 비롯해서 교회에 침투해 들어온 이단인 영지주의를 경계하고 멀리하고 그들의 가르침을 받지 말 것을 계속해서 말했습니다. 결국 교회가 사망에 이르는 죄를 짓는 것은 우상숭배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말한 것이기도 합니다. 영지주의 이단은 결국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우상숭배의 길로 나가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이외의 것을 믿는 것이 우상숭배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의 삶에서 우상숭배의 길은 널려 있습니다. 자식을 과도하게 사랑하는 것도 우상숭배가 될 수 있습니다. 자식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면 그것이 우상숭배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물질숭배주의라는 우상숭배와 치열한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얼마만큼 돈의 위력이 대단합니까? 이것은 기독교적인 물질관을 확립할 때 해결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물질을 사용하면 우상숭배가 되지 않지만 예수 그리스도보다 돈을 앞세우면 우상숭배입니다. 모든 것을 돈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면 우상숭배의 길로 들어선 것일 수 있습니다. 모든 문제의 해결자는 예수 그리스도임을 인정할 때 우리들은 우상숭배의 길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우상숭배와 관련해서 안타까운 사람이 있습니다. 정약용입니다. 그는 23세때인 1783년에 그의 큰 형 정약현의 처남 이벽을 통해 천주교에 대해 듣고 관심을 갖게 되어 이벽, 이승훈, 권철신, 정약전 등이 모여 강학을 했고, 이를 통해 천주교를 받아들였습니다. 그런데 1791년 윤지충은 1790년 말 윤유일을 통해 전달된 북경 주교의 조상제사 금지령에 따라 조상제사를 폐지하고 그 신주들을 땅에 묻었습니다. 그러던 중 1791년 여름 그의 어머니 권씨가 별세하였으나 제사를 지내지 않아 발각되어 그의 외종형 권상연과 함께 진산 군수에게 체포되어 심문받은 후 전라감사 정민시의 심문을 받아 결국 멸륜패상’, ‘무군무부의 난행을 범한 죄목으로 사형 선고되어 1791128일 전주 풍남문 밖 형장에서 참수되었습니다(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80). 이렇게 천주교 박해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정약용은 사는 길을 택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배교했습니다. 그 이후 신유박해에서 배교했음에도 다시 체포되고 박해를 받았지만 그는 유배를 간 18년 동안 학문에 정진하여 500여권에 달하는 책을 집필하여 현재까지 대학자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천주교에서는 그가 배교한 후에 다시 천주교로 돌아왔는지에 대해서는 불명확하게 보고 있습니다. 정약용이 천주교로 다시 신앙을 가졌는지에 대해서는 그의 아들이 천주교 때문에 집안이 망하였다고 젊은 시절에는 불평했지만 죽기 전에 천주교를 믿었던 것으로 볼 때 긍정적으로 볼 여지도 있지만 그가 배교한 후에 성리학에 근거해서 학문을 전개한 것 등은 부정적인 것들입니다. 초기 천주교의 확산은 정약용의 큰형 정약현의 처남인 이벽을 시작으로 해서 정약용의 매형인 이승훈, 정약용의 외종 6촌인 윤지충, 정약용의 조카 사위인 황사영, 천주교 명도회 초대회장으로 교리를 가르친 정약용의 셋째 형 정약종 등, 정약용의 친인척과 그와 연관된 스승과 남인 동문들을 중심으로 전개되었음을 알게 됩니다.

천주교와 개신교는 분명 1517년 루터의 종교개혁을 통해 서로 신앙의 다른 점이 많기 때문에 서로 분리되었습니다. 그래서 조선 땅에 전래된 천주교를 이해하는데 개신교 입장에서는 분명 교리적이 차이점이 있음을 생각하고 접근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벽을 시작으로 조선에 전래된 천주교를 받아들이는 학자들과 전도, 그리고 박해와 배교, 그리고 순교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은 오늘을 사는 개신교 그리스도인으로서 믿음에 대한 큰 통찰을 줄 것입니다.

 

정약용은 배교를 한 것은 분명하지만 다시 그가 천주교로 돌아왔는지는 오늘날 불명확합니다. 그는 정조에게 신임을 얻어 형정 관료로 개혁을 추진하였고 유배를 통해 수많은 책을 저술하여 대학자로 인정받았지만 그가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영접하였는지에 대해서는 불명확합니다. 그리고 그는 17842월에 그라몽(Louis de Gramont) 신부에게 영세를 받고 베드로라는 이름을 받고 온 이승훈에게 세례를 받았고 사도 요한이름을 받았습니다(채기은, 24). 이렇게 1784년에 설립된 조선 천주교회는 1785년 봄부터 명례방(명동) 김범우의 집에 주일마다 모여 예배를 드리고 교리도 연구하였습니다(채기은, 25). 이 모임은 곧 발각되어 1785년에 김범우가 체포됩니다(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77). 그 후 1791년 윤지충과 권상연이 북경 주교의 조상제사 금지령을 따라 조상의 신주를 불태우고 제사를 지내지 않은 진산사건으로 정약용과 정약전은 붙잡혀 고문받았지만 정약용은 천주교를 배교하고 살아 남았습니다.

 

정약용은 배교를 통해 살아남았고 유배를 통해 500여 권의 책을 저술한 대학자라고 칭송받고 있지만 신앙인의 눈으로 그를 볼 때 안타깝습니다. 그가 그런 선택을 한데에는 결코 단순하지 않습니다. 학문을 통해 천주교를 접했기 때문에 조상제사를 금한 것에 대한 의문을 갖게 되었고 가문을 생각하여 순교를 생각하지 않고 살 길을 찾았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을 버리고 정조를 선택했습니다. 그는 젊은 시절 대략 8년 정도 믿음을 가졌지만 그 후에 배교의 길을 걸었고 다시 신앙을 회복했는지에 대해서는 불명확합니다. 그가 배교의 길을 걸어갔던 동안은 분명 우상숭배의 길이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우상숭배는 당연히 죄악이고 하나님께서 혐오하신 것임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난 우상숭배하지 않아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리고 우상숭배자들을 혐오하면서 그들을 비난할 것입니다. 그런데 천주교의 초기 전래 때 생과 사를 오가는 그들의 신앙을 보면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배교와 우상숭배자들에 대해 가볍게, 그리고 쉽게 말할 수 없음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우상숭배는 우리 주변에 흔히 있습니다. 그리고 그 우상숭배의 길은 생과 사를 오가는 길과 인생의 길, 가문의 성패 등 인간적인 고민이 있습니다.

 

그 인간의 고민을 통과하면서 우리들은 선택을 합니다. 정약용이 믿음을 나중에 가졌는지가 불명확하기 때문에 그를 볼 때 안타까움이 밀려옵니다. 정조와 함께 개혁의 길을 걸어간 정치가요 행정가이며, 실학과 성리학의 대학자로 평가를 받지만, 그가 하나님을 버렸다고 보여지기 때문에, 그는 명예를 얻었지만 가장 중요한 영원한 생명을 놓쳤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되기 때문에 슬프고 안타깝습니다.

 

사도 요한이 마지막에 당부한 자녀들아 너희 자신을 지켜 우상에게서 멀리하라는 우상숭배의 길을 걸어가는 것은 우리들 주변에 널려 있습니다. ‘신천지’, ‘구원파’, ‘하나님의 교회’, ‘여호와의 증인’, ‘정명석 이단’, ‘통일교’, ‘전능하신 하나님교회등 한국에 널리 퍼져 있는 이단들을 경계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우상이 됨을 이해하여 우리 주변에 있는 우상들을 멀리하여야 할 것입니다.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우상숭배를 깊이 이해하여 날마다 삶 속에서 그리스도 예수를 따르며 우상들을 버리시길 기원합니다. 아멘.

 

참고문헌

 

이필찬. “요일 5: 하나님으로부터 말미암는 증거”. 요한일삼서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개정판]. 목회와신학 편집부 . 서울: 두란노아카데미, 2009: 241-51.

채기은. 한국교회사. 서울: 기독교문서선교회, 1977. 삼판, 1983.

제자원. 옥스퍼드 원어성경대전 야고보서․․요한서신유다서. 제자원 편. 서울: 제자원, 2006.

한국기독교연사연구소. 한국 기독교의 역사 Ⅰ』. 서울: 기독교문사, 1989. 17, 1993.

Barton, Bruce B., Osborne, Grant R., Veerman, David R. 1, 2, 3 John. LABC. Tyndale House Publishers, 1998, 전광규 옮김, LAB 주석 시리즈 요한123. 서울: ()한국성서유니온선교회, 2007.

Jackman, David. The Message of the John’s Letters : Living in the love of God. 김일우 옮김. BST시리즈 요한서 신 강해 :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는 삶. 서울: IVP, 2003.

KBS실험실. “사도 요한, 정약용 3형제는 왜 천주교인이 되었나”. https://youtu.be/uDgJTsr4NqE

KBS지식. “정약용과 그의 형제들, 천주교의 사상과 서양의 기술을 마주하다!”. https://youtu.be/Ue2bgDr_crI

 

설교자 김태완 목사
설교일 20220515
본문 요일 5: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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