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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월 2일 주일오전예배_생명의 말씀과 교제, 그리고 기쁨

 

 

 

생명의 말씀과 교제, 그리고 기쁨

 

생명교회 김태완 목사

 

 

1:1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

1:2 이 생명이 나타내신 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언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 바 된 이시니라

1:3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림이라

1:4 우리가 이것을 씀은 우리의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사랑하는 형제, 자매님들 안녕하십니까?

2022년 새 해입니다. 모두 희망의 말들을 들으셨습니까?

새 해에 계획하신 것들이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씩 하나씩 모두 성취되길 소망합니다.

 

오늘 본문을 생명의 말씀과 교제, 그리고 기쁨이라는 제목으로 증언합니다.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을 저자는 소개하고 있습니다.

요한일서의 저자는 사도 요한입니다.

저작 시기는 주후 85-90년 사이에 에베소에서 기록하였을 것으로 추정합니다(바커, 202; 바톤 외, 27). 저작 시기를 주후 90-95년으로 추정하기도 합니다(제자원, 331). “교회의 초기 전승에 따르면 요한은 에베소에서 책 네 권을 모두 기록했습니다(바톤 외, 16).

요한이 본 서신서를 작성하고 있을 때는 에베소에서 목회하고 있었습니다(제자원, 332). 요한은 주후 70년 경에 예루살렘을 떠났을 것입니다(바톤 외, 16). 잠시 팔레스타인에 있다가 에베소로 갔을 것으로 추정합니다(바톤 외, 16). 요한은 약 30년 정도 에베소를 중심으로 소아시아의 교회들을 돌봤을 것입니다(제자원, 332).

저작 동기의 단서는 요일 2:19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변종길, 28). “그들이 우리에게서 나갔으나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하였나니를 통해 우리들은 교회에 이단이 침입하여 어려움을 겪고 이단을 물리쳤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변종길, 28). 이 이단은 요일 4:1에서 거짓 선지자들로 불려집니다(변종길, 29). 거짓 선지자는 그리스도를 부인하고 대적하는 점에서 적그리스도입니다(변종길, 29).

요일을 통해 볼 때 이 이단은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부인하고(2:22; 5:1),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부인하며(4:3,15; 5:5). 예수 그리스도가 육체로 오신 것을 부인(4:2)하고 있기 때문에 이들이 기독론과 관련된 이단임을 알 수 있습니다(변종길, 30). “요한이 마지막 남은 사도로서 대처해야 했던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영지주의자들인 거짓 교사들의 활동이었습니다(제자원, 332). “학자들은 이 이단을 일반적으로 가현설(Docetism)이라고 부르고 있으며, 특별히 케린투스(Cerinthus)를 가현설을 주장한 장본인으로 지목합니다(바톤 외, 19).

 

오늘 본문에서 태초에 있는 생명의 말씀은 요한복음 1:1과 창 1:1을 연상케 할 것입니다(바커, 207).

본문은 예수 그리스도의 선재성과 더불어 계속 존재하고 있음을 동시에 보여주는 표현입니다(제자원, 348).

생명의 말씀요한복음 1장의 내용을 독자들에게 강력하게 상기시켜 주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제자원, 347). “여기서 생명의 말씀은 인간에게 영원한 생명을 줄 수 있는 예수님을 지칭한다는 점에서 요한복음에서 밝힌 기독론과 동일합니다(제자원, 347).

 

요한일서는 서신이지만 문안 인사와 본론 및 맺음말로 구성되는 신약의 다른 서신서들이나 당시 그레코-로만 서신들의 전형적 형식을 갖추지 않았습니다(제자원, 347). 요한일서는 특정 교회나 인물을 대상으로 쓰여진 바울 서신과 달리 일반적 대상을 수신자로 하는 특징을 지녔기 때문에 요한이서, 요한삼서, 야고보서, 베드로전후서, 유다서와 함께 공동서신 혹은 일반서신(general letters)으로 불려집니다(제자원, 347).

 

요한이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를 태초에 있는 생명의 말씀으로 소개하면서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라고 예수 그리스도의 육체로 오심을 명확하게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그 때 교회에 침투해 온 이단, 즉 가현론(Docetism)적 시각의 무리들에 대한 직접적인 변증입니다(제자원, 348). “가현론자들은 예수님의 인성을 부인하고 신성만을 강조하는 자들로서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십자가의 육체적 죽음을 부인하는 자들입니다(제자원, 348). “2세기 중후반에 활동했던 이레니우스(Irenaeus)에 의하면, 사도 요한은 1세기 말 에베소에서 활동하고 있던 케린투스(Cerinthus)의 가르침에 대항하였다고 합니다(변종길, 30). 이레니우스는 다음과 같이 증거합니다(변종길, 30).

 

(케린투스)는 예수는 동정녀에게서 탄생하지 않았고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요셉과 마리아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그는 (다른 사람들보다) 더 의롭고 거룩하였다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세례를 받은 후 만물 위의 지극히 높은 권세로부터 그리스도가 비둘기의 모양으로 강림하였으며, 그 때 그는 알려지지 않은 아버지를 전파하고 이적들을 행하였다. 그러나 마지막에 그리스도는 예수로부터 떠나갔으며, 예수는 고난받고 부활하였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영적인 존재였기 때문에 고난으로부터 자유로웠다고 주장하였다(변종길, 30-31).

 

이렇게 가현설로 나타난 전영지주의자들(pre-Gnosticism)’이 발흥하여 초대교회를 위협하고 있었습니다(제자원, 332). 이렇게 영지주의(Gnosticism)는 계속적으로 성장하여 주후 2세기경에는 체계화가 됩니다(제자원, 332). 우리는 이렇게 초대교회사를 통해 영적 통찰을 얻을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그리고 승천이 불과 60년 정도 지났을 시점에 사도 요한을 제외한 사도들과 1세대 제자들이 거의 사라진 후에 벌써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적 사실성에 대한 이해의 부족 현상이 교회에 일어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제자원, 349). 오늘날 이 영지주의는 여전히 강력하게 이단들을 통해 전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초대교회에 있었던 기독론의 왜곡은 오늘날 심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현대신학 대부분은 기독론이 왜곡되어 진행되고 있고, 특히 종교다원주의를 통해 강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본문에서 만진 바라예수 그리스도와 공생애 기간을 함께 보낸 것을 나타내기도 하지만 특히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사건을 염두해 둔 표현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제자원, 348).

 

이 생명이 나타내신 바 된지라생명은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1:4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14: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이 생명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자기비하(케노시스)는 우리에게 어떻게 나타나고 있습니까?

 

이 영원한 생명생명의 말씀을 보완하여 설명하는 것으로 생명의 근원인 그리스도 자신을 지칭합니다(제자원, 350). 이는 하나님의 형상이신 예수께서는 그분을 믿는 모든 자들에게 영적인 생명과 영원한 생명을 주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바톤 외, 32).

 

우리가 보았고 증언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를 통해 우리들은 신앙의 계승을 알게 됩니다. 사도들이 경험한 신앙을 증언하고 전하고 그것을 듣고 배운 제자들이 또 다른 제자들에게 신앙을 계승시키는 것이 복음전파입니다. 우리들도 듣고 배운 것을 다른 제자들에게 증언하고 전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 신앙계승에 문제가 심각합니다. 특히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신앙전수를 제대로 해 주지 않기 때문에 개신교는 위기에 들어가고 있습니다. 오늘날 교회가 청소년과 청년들의 신앙의 문제로 교회가 약해지고 있습니다. 이 신앙전수를 책임감 있게 인식하고 신앙을 계승시켜 나가야 할 것입니다.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를 통해 삼위일체에 대한 이해를 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아버지 하나님과 함께 계셨습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대한 이해를 넓히고 깊게 해 가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을 통해 신앙을 전수하는 것이 중요함을 거듭 알게 됩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파하는 것은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먼저 우리는 보고 들어야 합니다. 누구를 통해서 듣습니까? 사도들을 통해, 초대교회 성도들을 통해, 그리고 종교개혁자들을 통해, 그 신앙이 계승된 목사들과 장로, 권사, 집사들을 통해, 그리고 부모들과 신앙의 선배들을 통해 듣습니다. 지금 보고 듣고 있습니까?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를 통해 우리들은 성도의 교제에 대해 이해할 수 있습니다. 교회는 코이노니아로 불립니다. 본문에서 사귐의 헬라어는 코이노니아(κοινωνία)’공통된이란 의미를 가진 형용사 코이노스(κοινός)’에서 유래된 말로 상호 간에 공통점을 발견한 대상이 공통된 정서를 나누며 공통된 목표를 지향하며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제자원, 352). “신약에서 이 단어는 모든 그리스도인이 살아 있는 관계나 연합 가운데 공유하는 생명(영적이며 영원한)을 가리킵니다(바톤 외, 34). 이 성도의 교제가 진실되기 위해서는 삼위일체 하나님과 사귐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림이라를 통해 우리는 삼위일체 하나님과 사귐이 있지 않고는 성도의 교제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성령에 의해 거듭났을 때, 제자들은 실제로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갖는 교제에 들어갑니다(제자원, 34). 우리는 그래서 삼위일체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갖춰가야 합니다. 삼위일체는 상호내주(περιχορησις, 페리코레시스)’하십니다. 이 상호내주에 대한 이해를 충분히 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오늘날 이 상호내주와 관련해서 이해가 깊어지고 있는데, 그 중 하나는 관계적 삼위일체입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은 세 위격을 독립해서 가지시지만, 즉 서로 구별되시지만 한 분 하나님으로 연합하여 존재하십니다. 그리고 이 연합은 상호내주를 통해 이뤄집니다. 이를 통해 성찬에서 떡과 포도주가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와 연관 되는가에 대해 칼빈(Calvin)에 의해 제기된 영적 임재설을 우리는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성찬식을 통해 떡과 포도주는 성령께서 임하시고 성령의 임재는 삼위일체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와의 연합이 있기 때문에 떡과 포도주와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는 관련됩니다. 이렇게 우리들은 삼위일체와 긴밀한 연합을 이뤄가야 합니다. 이 연합은 피상적인 것이 아니고 실제적이어야 합니다. 실제적이기 위해서는 요한이 경험한 예수와의 사건들이 우리들 삶 속에서 관계가 직접적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요한은 예수님과의 교제에 대해 알고 있었다. 예수께서 십자가형을 당하시기 전에 마지막 시간에, 예수께서는 요한과 베드로, 야고보에게 함께 겟세마네에서 기도할 것을 요구하셨다”(바톤 외, 34) 등이 우리에게도 경험되어야 합니다. 교제는 단순하게 말로 그치는 것이 아니고 실질적으로 서로 부딪히는 경험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말로 한다면, 좋은 것만 나누는 것이 아니고 고통과 책임도 함께 나누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씀은 우리의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를 통해 성도의 교제를 통해, 삼위일체 하나님과 교제로 나아가고, 이 교제는 공동체적으로 기쁨이 충만하게 되는 것입니다. 관계성에서 존재를 인식하는 것이 사람입니다. 이것은 중요한 원리입니다. 나는 나로 단독으로 존재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 단독자로 창조하시지 않으셨습니다. 그것은 관계의 존재로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인간과의 교제를 위해서 에덴 동산을 만드셨습니다(제자원, 354). 왜 그럴까요? 하나님께서 관계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삼위일체는 관계의 하나님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근본적으로 기쁨이십니다. 이 기쁨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모두 공유됩니다. 관계 속에 기쁨이 공유됩니다.

15:11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어떨 때 기뻐합니까? 자녀들이 잘 되었을 때 대부분의 부모들은 기뻐할 것입니다. 이렇듯 관계 속에 서로 잘 되었을 때 기쁨이 충만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에 복을 주십니다. 이 하나님의 복은 기쁨의 근원입니다. 복 받고 기뻐하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관계를 통해 교회는 하나님의 사랑을, 하나님의 복을, 그리고 하나님의 기쁨을 서로 공유합니다. 할렐루야. 아멘.

 

 

참고문헌

 

변종길, “요한서신의 기록 동기와 배경”. 요한일삼서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개정판]. 목회와신학 편집부 편. 서울: 두란 노아카데미,              2009: 27-46.

제자원. 옥스퍼드 원어성경대전 야고보서․․요한서신유다서. 제자원 편. 서울: 제자원, 2006.

Barker, Glenn W. 1, 2, 3 John in Hebrews through Revelation. EBC. Zondervan, 1982, 엑스포지터스 성경 연 구 주석 : 야고보서, 베드로              전후서, 요한 1,2,3, 요한계시록. 서울: 기독지혜사, 1985.

Barton, Bruce B., Osborne, Grant R., Veerman, David R. 1, 2, 3 John. LABC. Tyndale House Publishers, 1998, 전광규 옮김,  LAB  주 석 시리          즈 요한123. 서울: ()한국성서유니온선교회, 2007.

 

 

 

설교자 김태완 목사
설교일 20220102
본문 요일 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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