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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4월 24일 주일오전예배_증언하는 이가 셋이시다

 

 

 

증언하는 이가 셋이시다

 

생명교회 김태완 목사

 

 

 

요일 5:5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냐

5:6 이는 물과 피로 임하신 이시니 곧 예수 그리스도시라 물로만 아니요 물과 피로 임하셨고 증언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

5:7 증언하는 이가 셋이니

5:8 성령과 물과 피라 또한 이 셋은 합하여 하나이니라

 

사랑하는 형제, 자매님들 안녕하십니까?

한 주 어떻게 지내셨습니까?

인생을 잘 가꾸고 사셨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전쟁은 역시 잔인함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합니다.

민간인을 러시아 군대가 후퇴하면서 학살했다는 소식이 들려옵니다.

우크라이나는 많은 피해를 당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크라이나는 독도 표기에 있어서 교육웹사이트에서는 다케시마로 경제통상부에서는 리앙쿠르로 표기하고 있습니다. 주한 우크라이나 대사관도 이러한 표기에 대한 CBS노컷뉴스의 이의제기에 대해 합당한 답변은 없고 다만 우크라이나 정부는 국제적으로 인정되는 국경선 범위 안에서 모든 국가의 주권을 존중한다는 입장만 밝히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의 이러한 태도는 실망스럽습니다.

격변의 시대에 우리나라는 외교적 역량을 발휘하여 국제사회에서 인정받고 국익을 높여가야 할 것입니다.

https://www.nocutnews.co.kr/news/5743173

 

 

오늘 본문을 증언하는 이가 셋이시다라는 제목으로 증언합니다.

 

사도 요한은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라고 편지했습니다.

그러면서 이어서 이렇게 편지합니다.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냐라고 반문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하나님과 동일한 신적 권능을 가지신 예수님의 신성을 강조한 표현입니다(제자원, 586). 이 표현은 예수를 단지 인간일 뿐이라고 주장하는 케린투스이단을 염두해 두고 사도 요한이 언급하고 있습니다. 케린투스는 예수는 세례와 죽음 사이 기간에만 그리스도라고, 달리 말하면 예수는 세례 받기 이전에는 단지 인간일 뿐이었으나 세례 때에 그리스도가 그에게 강림하셨고 십자가에 죽기 직전에 다시 떠나셨다고 주장합니다(바톤 외, 172).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사람들은 주가 세상을 이기신 것처럼 세상을 이깁니다. 여기서 세상은 κόσμος’(코스모스)하나님을 대적하는 악한 영의 활동 공간 및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속 사상과 가치관 등을 의미합니다(제자원, 585).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렇듯 악으로 물든 도덕적 체계나 사단의 영향을 받고 있는 모든 것들과 싸워 이깁니다(제자원, 585). 오늘날 우리들은 우리가 살고 있는 나라와 사회의 제도, 체제, 그리고 가치관 등이 얼마나 하나님과 다른가를 잘 알고 있습니다. 윤석열 당선인이 장관 후보자들을 임명했는데, 많은 후보자들이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이상으로 부도덕한 사람들로 우리에게 비춰지고 있습니다. 오늘날 고위직 공직자들에게 높은 도덕 수준을 요구할 수 없는 지경에 대한민국은 이르고 있습니다. 이렇게 사회가 진행되면 부자와 고위직 공무원과 정치인 등 사회 상류층을 불신하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불법과 부도덕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들 중에 상류층에 속한 사람들도 불법과 부도덕을 일삼고 있지는 않습니까? 자세히 살펴보지는 않았지만 그리스도인들 상류층도 아마 불법과 부도덕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세상과의 싸움에서 패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왜 기독교는 사회적으로 부정적으로 비춰지고 있을까요?

그 이유는 세상과 구별되지 않고 세상에 편승하여 세상의 방법대로 살아가는 타협을 선택했기 때문입니다. 세상과 전쟁을 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계명을 지키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된 데에는 그리스도인들이 정말로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현재 그리스도인들은 정말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는가란 질문에 진지한 대답을 해야 할 때입니다.

자기 자신에게 질문해 보시기 바랍니다. “나는 그리스도인인가?”

 

사도 요한의 의도와 그리스도인들이 승리하는 방법에 대해 LAB 주석은 이렇게 진술하고 있습니다(바톤 외, 171-72)

 

세상을 이기는 것에 대해 말을 했을 때, 요한이 나타내고자 한 바는 정확히 무엇이었을까? 그는 흐름을 거스르는 것, 즉 자신의 듯을 행하는 데 열심인 문화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을 의미했다. 신자들로서 우리가 승리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1) 하나님의 자녀로서 우리의 신분을 이해하고 우리가 가진 자원을 이용하라. (2) 매일의 일과 중에 하나님의 인도를 의지하라. (3) 우리의 모범이시며 믿음의 선구자이신 그리스도께 초점을 맞추라(참조. 16:33; 12:1-2). 비록 최종 싸움은 그리스도 안에서 승리했지만, 각각의 전토는 매일 성령의 능력으로 맞서 싸워야 한다. 그리스도에 대한 당신의 신뢰를 새롭게 하고 당신의 삶 속에서 그분의 승리를 주장함으로 매일을 시작하라.

 

사도 요한은 승리를 말한 다음에 편지를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5:6 이는 물과 피로 임하신 이시니 곧 예수 그리스도시라 물로만 아니요 물과 피로 임하셨고 증언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사도 요한은 물과 피로 임하신 이라고 합니다.

본문에서 물과 피는 무엇을 의미합니까?

물로 번역된 ‘ὕδατος’(휘다토스)와 피로 번역된 αματος’(하이마토스)가 무엇인가에 대해 많은 이견이 있습니다(제자원, 588). 이견 중 3가지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칼빈(J. Calvin)과 루터(M. Luther)는 본절의 물과 피를 세례와 성찬을 의미하는 성례전으로 이해했습니다(제자원, 588).

2. 히포의 주교 어거스틴(A. Augustin)은 본절의 물과 피를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물과 피로 이해했습니다(제자원, 588).

3. 터툴리안은 본절의 물은 예수의 세례를, 피는 십자가에서 죽으심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했습니다(바커, 260).

이 견해들 중 터툴리안의 견해가 많은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제자원, 588). 이 견해를 통해 우리는 그리스도의 공생애 사역의 시작을 상징하는 물과 공생애 사역의 완성을 상징하는 피란 표현은 예수님이 그리스도로 행하신 사역 전제를 포괄하는 표현으로 이해합니다(제자원, 588).

 

사도 요한이 본문에서 물로만 아니요 물과 피로 임하셨고라고 표현한 것은 케린투스가현설등 영지주의 이단들을 염두에 둔 표현으로 물과 피는 그리스도의 사역 전체를 나타내는 표현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이필찬, 245-46).

 

이 케린투스와 가현설 등 기독교 이단에 대해 LAB 주석의 글은 우리들이 참조할 만합니다(바톤 외, 173)

 

예수 그리스도께서 물과 피로임하신 것에 대해 언급했을 때, 요한은 단지 모호한 신학적인 요점을 주장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다. 그는 신적인 그리스도의 영이 십자가에 못 박히기 전에 인간 예수를 떠났다는 케린투스의 주장을 반반하고 있었다. 요한은 사상이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과, 잘못된 사상은 결국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삶을 파괴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스도인들은 기독교의 역사적이고 정통적인 신조들을 잘 알고 있어야 할 뿐만 아니라 그것들을 명료하게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어쩌면 지금이 당신의 기초 신학을 복습할 적기일 수 있다. 오류가 발생하는 때에 당신이 그것을 인지하도록, 읽기 쉬운 한 권짜리 기초 성경 교리서를 마련하라.

 

증언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

성령의 역할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것입니다(잭맨, 222).

15:26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언하실 것이요

16:13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14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겠음이라

성령은 성경 즉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통하여 증언하시며, 이것에 의해서 인간의 마음이 교훈을 받고 인간의 의지가 변하게 된다. 그분은 그리스도를 순종하며 따르는 사람들로 하여금 더욱 그 주인을 닮도록 이끌어 가신다”(잭맨, 222).

신학적으로 성령 하나님은 성자에 의해 성취된 구원을 각 개인에게 적용시키십니다(한성기, 359).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의해 완성된 구속의 효과를 직접 우리에게 적용시켜 우리 각자를 구원을 받게 하는 것은 성령의 역사입니다(한성기, 359). 성령 하나님은 다른 보혜사이시며 구속사역을 이루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하시고 성화의 길을 가도록 인도하시며, 구원을 완성하십니다.

 

사도 요한은 증언하시는 분이 성령이라고 하면서 다시 이렇게 편지합니다.

증언하는 이가 셋이니라고 하면서 성령과 물과 피라 또한 합하여 하나이니라

이 본문은 많은 오해를 낳았습니다. 본문은 삼위일체를 말하는 것으로 오해하기 쉽습니다.

표준 원문(Textus Receptus)을 보면 본문 뒤에 다음의 구절이 삽입되어 있습니다(제자원, 590). “하늘에서는 아버지, 말씀, 그리고 성령이니, 그리고 이 셋이 하나이라, 그리고 땅에서는 증거하는 이가 셋이니(KJV, iin heaven, the Father, the Word, and the Holy Ghost: and these three are one. And there are three that bear witness in earth)”[제자원, 591]. 이 표준 원문에 따라 번역한 KJV의 입장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이 구절이 삼위일체를 직접적으로 입증하는 구절로 삼아 이 삽입절이 없는 한글 개역개정과 다른 영역본들은 큰 오류를 범하고 있다고 비난합니다(제자원, 591). 그러나 시내사본(א), 알렉산드리아사본(A), 바티칸사본(B) 등 대부분의 권위 있는 사본들은 이 삽입구를 배제하고 있고 소수의 사본만이 자구적 일치도 보이지 않은 채 발견되기 때문에 그들의 비난은 신뢰가 떨어집니다(제자원, 591).

이 본문 삽입과 관련하여 다음의 글을 LAB 주석에서 인용합니다(바톤 외, 174)

 

NKJV하늘의 아버지와 말씀과 성령이라. 이 셋은 하나이니라. 또한 증언하시는 이가 셋이니, 땅 위의라는 말은 위조된 것이다.

소위 하늘의 증인이라 불리는 이 유명한 구절은 많은 논란의 대상이 되어 왔다. 그것은 세 요소(, , 성령)가 삼위일체를 상징한다고 설명하는 요한15:8의 난외주에서 나온 것이었다. 이 난외주는 위에 인용된 것과 같은 형태로 본문 속에 들어간 것이 틀림없다. 이 구절은 라틴 기원을 갖고 있다. 처음 등장하는 곳은 4세기의 스페인 이단인 프리스킬리안(Priscillian)의 저작에서였다. 그것은 5세기 이후의 다른 라틴 교부들의 글에서도 나타났으며, 점점 더 많은 라틴 벌게이트(Vulgate)의 복사본들 속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러나 이 문구는 11세기 이전의 어떤 헬라어 사본에서도 발견되지 않으며, 헬라 교부들 중 그 누구도 인용하지 않았다. 에라스무스는 그가 펴낸 헬라어 신약의 첫 두 판에는 하늘의 증인구절을 포함시키지 않았다. 이 때문에 그는 라틴 벌게이트의 옹호자들에게 비난을 받았다. 그에 답하여, 에라스무스는 만일 자기가 단 하나의 헬라어 사본에서라도 그 구절을 발견한다면 그것을 포함시키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이 구절을 포함시키려고 헬라어 사본 하나가 특별 제작되었다. 에라스무스는 자기가 한 약속을 지켰고, 세 번째 판에 이 구절을 포함시켰다. 그때부터 이 구절은 공인본문(Texus Receptus)에 속하게 되었고, 그래서 KJVNKJV에 번역되어 있는 것이다.

요한15:7-8NIV(또한 우리말 역본들역자 주)에 있는 대로 언언하시는 이가 셋이니, 곧 성령과 물과 피라. 이 셋은 일치하느니라로 읽어야 한다. 이 구절은 삼위일체와 아무런 관련이 없으며, 예수님의 생애에서 중요한 국면과 관련이 있다. 그 국면들은 예수께서 성육신하신 하나님, 즉 인간의 모습으로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명백히 드러난 경우들로서, 예수님의 세례()와 죽음()과 부활(성령)이 바로 그것이다. 세례 때에,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이심이 선포되었다(참조. 3:16-17). 피 흘리신 십자가 죽음에서, 예수께서는 다른 사람들에 의해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다(참조. 15:39). 그리고 부활에서, 예수께서는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이라 불리셨다(1:3-4). 이 삼중의 증언은 한 가지 측면에서 일치된다. 즉 각각의 사건들은 인간 예수가 하나님의 신성한 아들이심을 입증한 것이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들은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분명하게 믿어야 합니다.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증언하는 분 셋이 있습니다. 이 표현은 성령께서 인격을 지니신 분이시고, 이러한 성령과 함께 물과 피가 한 단위로 묶여지므로 함께 의인화된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이필찬, 246). 이 셋은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세례 받으신 사건을, 피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 흘려 죽으신 십자가 사건을, 성령은 제자들에게 임했던 오순절 사건을 나타냅니다(제자원, 591). 이 셋은 예수가 그리스도이심과 하나님의 아들되심,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가 인간으로 오셨고 참 하나님과 참 사람임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들 주변에 있는 이단들의 공격을 막아내기 위한 영적 전쟁과 노력을 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들이 예수가 그리스도이심과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다면 그분이 세상을 이겼듯이 우리들도 세상을 이길 것입니다. 세상을 부러워하지 말고, 타협하지 말고, 악에게 지지말고, 믿음으로 당당하고 담대하게 싸워 승리합시다. 아멘. 할렐루야.

 

 

참고문헌

 

이필찬, “요일 5: 하나님으로부터 말미암는 증거”. 요한일삼서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개정판]. 목회와신학 편집부 편. 서울: 두란노아카데미, 2009: 241-51.

제자원. 옥스퍼드 원어성경대전 야고보서․․요한서신유다서. 제자원 편. 서울: 제자원, 2006.

한성기. 신앙고백적 조직신학. 안양: 도서출판 잠언, 2012.

Barker, Glenn W. 1, 2, 3 John in Hebrews through Revelation. EBC. Zondervan, 1982, 엑스포지터스 성경 연 구 주석 : 야고보서, 베드로전후서, 요한 1,2,3, 요한계시록. 서울: 기독지혜사, 1985.

Barton, Bruce B., Osborne, Grant R., Veerman, David R. 1, 2, 3 John. LABC. Tyndale House Publishers, 1998, 전광규 옮김, LAB 주석 시리즈 요한123. 서울: ()한국성서유니온선교회, 2007.

Jackman, David. The Message of the John’s Letters : Living in the love of God. 김일우 옮김. BST시리즈 요한서 신 강해 :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는 삶. 서울: IVP, 2003.

설교자 김태완 목사
설교일 20220424
본문 요일 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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