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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월 30일 주일오전예배_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간다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간다

 

생명교회 김태완 목사

 

 

 

요일 2:12 자녀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 죄가 그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사함을 받았음이요

2:13 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알았음이요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라

2:14 아이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아버지를 알았음이요 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알았음이요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강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 안에 거하시며 너희가 흉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라

2:15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2:16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2:17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사랑하는 형제, 자매님들 안녕하십니까?

지난 한 주 잘 지내셨습니까?

코로나19 오미크론 감염이 가파르게 확산되고 있습니다.

코로나19를 통해 전염병이 얼마나 무서운가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됩니다.

오늘날 의학이 발전한 수준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죽는 것을 통해 역사적으로 유럽에 큰 피해를 주었던 흑사병의 공포가 얼마나 크고 비참했을까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님들 재앙을 통해 죽음을 목격하면서 삶과 죽음에 대해 생각을 해 보셨습니까?

재앙을 통해 삶과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 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간다라는 제목으로 증언합니다.

 

사도 요한은 요일 2:12-14에서 자녀들에게 사도적 격려를 합니다(제자원, 404). “그는 여기서 동일한 단어와 동일한 구문을 반복적으로 사용함으로써 하나의 시적인 표현을 구사합니다(변종길, 186). 사도 요한은 본문에서 자녀들’, ‘아비들’, ‘청년들’, 다시 아이들’, ‘아비들’, ‘청년들을 반복적으로 사용합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 이견이 있습니다(제자원, 405). 첫 번째 견해는 이 묘사가 문자 그대로 연령 집단들아이들, 아비들, 청년들을 가리킨다고 생각합니다(바톤 외, 68). 두 번째 견해는 이 분류가 제자도나 성숙 면에서 서로 다른 수준을 가리키는 은유라고 이해합니다(바톤 외, 68). 세 번째 견해는 요한이 교회 안의 모든 사람을 가리키려고 자녀들이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으며, ‘아비들청년들은 모든 이를 포괄하면서 말에 변화를 주려는 문체상의 강조라고 이해합니다(바톤 외, 68). 이 세가지 견해 중에서 마지막 견해가 가장 잘 해석된 견해로 이해됩니다(바톤 외, 68; 변종길, 187). 그렇지만 첫 번째 견해와 두 번째 견해도 반영되어 포괄적으로 이해하고 말에 변화를 주려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이에 대해 옥스퍼드원어성경대전은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견해는 자녀들아디들은 본서신 전체 수신자들을 지칭하는 노사도 요한의 애정 어린 호칭으로 보고, ‘아비들은 비교적 연령층이 높으며 교회 공동체 안에서 지도적 위치에 있는 자들에 대한 호칭으로, 또한 청년들은 상대적으로 젊고 활기차게 주의 일을 하는 자를 지칭하는 호칭으로 보는 것이다”(제자원, 405).

 

본문에서 자녀들아테크니아(τεκνία)’로 사도 요한이 모든 믿는 사람들의 회중을 가리키기 위하여 가장 잘 쓰는 말입니다(바커, 223). 사도 요한이 초대교회 성도들을 사랑하며, 애정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면서 사용한 표현입니다. ‘아이들아파이디아(παιδία)’으로 그 원형 파이디온(παιδίον)’어린아디라는 뜻입니다(제자원, 408). ‘테크니아의 원형 테크니온(τεκνίον)’파이디온(παιδίον)’은 의미에 있어 약간의 차이가 있는데, ‘테크니온은 종족의 개념이 내포되고 파이디온은 훈련과 교육과 양육이 더 필요한 어린아이란 개념이 강합니다(제자원, 408).

사도 요한이 자녀들아아이들아로 변화를 주어 부른 이유는 큰 틀에서는 모든 성도들을 다양하게 부르면서 변화를 주려는 문체상의 강조로 이해하면서 연령층과 신앙의 성숙도, 그리고 직분 등을 고려한 것으로 종합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이렇게 접근하면 아이들아는 표현은 모든 성도들을 언급한 자녀들아의 다른 표현이고 아이들은 교육과 양육이 더 필요한 대상을 염두하면서 이들이 그리스도와 하나님에 대하여 과거로부터 지속적인 성장과 발전을 통해 현재에 이른 경험적 지식을 가지고 있었음을 강조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제자원, 409).

 

너희 죄가 그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사함을 받았음이요

모든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사함을 받습니다. 이것이 신앙의 출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 성도들 각자를 위해 십자가에 피 흘려 죽으심으로 죄값을 치루셨습니다. 이 대속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구원자로 믿고 영접한 성도들은 구속, 즉 죄용서와 죄사함을 받았습니다(참조. 제자원 406). ‘사함을 받았다아페온타이(ἀφέωνται)’로 그 원형 아피에미(ἀφίημι)’1:9에서도 사용된 단어로 죄를 자백함으로 성도들이 얻게 되는 용서 및 정결함과 긴밀하게 연결됩니다(제자원, 406). 그리고 아피에미가 본문에서 완료 수동태로 쓰여 죄사함이 이미 이루어졌고 그 효력이 여전히 지속되고 있음을 나타냅니다(제자원, 406).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알았음이요

이 말씀은 아비들에게 한 것인데, 여기서 아비들은 모든 성도로 이해하는 것이 적절하고, 범위를 좁혀서 이해한다면 초대교회 공동체에서 비교적 높은 연령층과 영적 경험이 풍부하고 신앙심이 깊은 사람들을 의미한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본문에서 태초부터 계신 이는 아버지 하나님으로 이해할 수도 있지만, 이후에 나오는 14절에서 아버지가 나오기 때문에 그리스도로 보는 것이 좋은 해석입니다(바커, 223). 본문은 사도 요한이 예수 그리스도의 선재성에 대해 의심과 부인을 했던 당대 사람들, 특히 영지주의에 영향을 받은 사람들에게 그의 선재성을 강조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아비들믿음에 대한 오랜 경험을 갖고 있으며, 그들의 성숙에 맞는 지식을 소유하고 있습니다(바톤 외, 69).

 

너희가 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라

청년들영적 전투의 최전방에서 적의 공격을 막아내고 적들과 대치하여서 강력하게 버틸 수 있는 영적 힘을 소유한 자들을 의미합니다(제자원, 407).

본문에서 이겼다네니케카테(νενικήκατε)’로 그 원형 니카오(νικάω)’승리하다’, ‘쳐부수다라는 뜻으로 사탄에 대한 그리스도의 승리로 말미암은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진 승리를 가리킵니다(제자원, 407). ‘네니케카테가 완료 능동태로 과거에 이미 이루어진 승리가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성도의 생활 가운데서 계속 나타남을 의미합니다(제자원, 407). 이렇듯 사도 요한은 모든 성도들이 악한 자를 이겼다고 언급하지만, 이를 표현함에 있어 건장한 청년들을 통해 비유적으로 영적 전쟁에서 이겼음을 표현 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모든 성도들에게 영적 전쟁은 피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가 이미 이 전쟁에서 승리하셨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 또한 과거에도, 현재에도, 그리고 미래에도 승리합니다.

 

사도 요한은 14절에서 12-13절 내용을 조금 변형시켜 다시 한 번 강조합니다.

 

아버지를 알았음이요

사도 요한은 초대교회 성도들이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용서를 입은 사람들임을 12절에서 언급한 다음, 14절에서 그들이 하나님을 알았다는 사실을 언급함으로써 신비적 지식을 강조하는 영지주의자들의 가르침과 다른 하나님과 죄사함에 대한 체험적 지식이 성도들에게 중요함을 선포하고 있습니다(제자원, 409).

이를 통해 우리들은 신앙의 기초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사함 받는다는 것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아버지 하나님을 알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아버지를 알았다는 것은 삼위일체를 알았다는 것과 그 의미가 같습니다. 왜냐하면 삼위일체 하나님을 모르면서 아버지 하나님을 알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사도 요한은 청년들과 아비들을 통해 12-13절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반복한 이유는 영지주의와 관련해서 이런 경험적이고 체험적인 지식과 신앙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이런 신앙을 통해 영지주의를 분별할 수 있고 그들에게 미혹당하지 않게 됩니다. 이는 오늘날에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오늘날 체험적이고 경험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죄사함과 영적전쟁, 그리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영지주의를 분별할 수 있는 힘을 제공합니다.

 

사도 요한은 교회 성도들에게 사도적 격려를 반복적으로 한 후에 앞에서 언급한 죄 짓지 않는 삶에 근원적인 원인에 해당하는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라고 사도적 통찰을 말합니다.

사도 요한은 요한일서를 통해 영지주의를 경계하면서 빛 가운데 행할 것을 죄를 자백할 것과 죄 짓지 말 것을 언급했습니다. 이렇게 죄 짓지 않는 것은 그리스도의 계명을 지키는 것과 연결되고 있으며, 그리스도의 말씀을 지키는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이 그 속에서 온전하게 된다고 언급을 앞에서 이미 했습니다. 이 하나님의 사랑은 죄 짓지 않는 삶과 근원적으로 연결되어 있고, 이 사랑에 대해 요일 2:15세상아버지의 사랑을 대조하면서 다시 한 번 강조합니다.

 

본문에서 세상은 요 3:16에 언급된 세상과는 다릅니다(바커, 225). 3:16에 나타난 세상은 하나님께서 선하다고 선포하셨고 그분의 영광을 드러내고 있는 하나님의 창조물을 가르킵니다(바톤 외, 72). 본문에서 언급한 세상은 사탄의 영향력이 미치는 영역, 하나님과 그분의 뜻을 미워하는 자들로 구성된 체제를 가르킵니다(바톤 외, 72). 세상은 하나님을 떠나 공중 권세 잡은 자들의 통치를 받는 영적인 세계, 사상, 가치관, 삶의 방식 등을 가리킵니다(제자원, 410).

 

본문을 통해 우리들은 세상을 사랑하는 것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상호 배타적 관계임을 알게 됩니다(제자원, 410). 주께서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마 6:24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들의 삶 속에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세상을 미워합시다. 여기서 세상은 사탄에 속한 영역과 체제 입니다.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우리들 삶 속에 있다면 그것은 우상숭배입니다. 그런 우상숭배들을 오늘 모두 회개하고 버립시다.

 

사도 요한은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에 대해 자세히 풀어 설명합니다.

그것은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그리고 이생의 자랑입니다. 이 목록은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보고 느낀 것(3:6)과 관계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제자원, 411).

우리들은 세상의 것들을 철저히 버리고 미워해야 합니다.

 

육신의 정욕

육신사르코스(σαρκς)’로 그 원형 사륵스(σάρξ)’육체’, ‘’, ‘을 뜻합니다(제자원, 412). 신약 성경에서 이 단어는 타락한 본성을 나타내는 단어로 많이 쓰였습니다(제자원, 412).

정욕에피뒤미아(ἐπιθυμία)’로 인간이 가진 욕망을 뜻합니다(제자원, 412). ‘욕망은 가치 중립적이지만, 본문에서 욕망은 타락한 본성으로부터 나오는 악한 욕망을 뜻합니다(제자원, 412). 이 욕망은 하와가 사탄의 꾐에 빠져 선악과의 먹음직스러움에 유혹된 것과 동일한 것입니다(제자원, 412).

육신의 정욕하나님을 거역하고 율법을 파괴하는 기초가 될 뿐 아니라, 물질적이고 자기 중심적이고 착취적이고 이기적인 모든 것을 지니고 있습니다(바커, 225). “이 범주는 무엇보다 성적인 정욕을 가리키는 듯이 보이기는 하지만, 하나님께 반항하는 인간의 육체적 욕망만을 만족시키는 이기적이거나 탐욕적인 갈망 또한 어떤 것이든 육신의 정욕으로 여겨질 수 있습니다(바톤 외, 76).

 

안목의 정욕

마샬은(p. 145) ‘이것이 눈에 보이는 외부의 호사스런 광경에 빠져드는 경향을 뜻하지만, 그 근본적인 뜻은 그들 눈에 들어오는 모든 사물에 대한 탐욕이리고 보는 것이 올바르다라고 주장합니다(바커, 225). “이브는 보암직한’(3:6; ‘눈을 만족시키는NIV) 선악과를 원했으며, 아간은 아름다운 바벨론산 외투와 은, 금을 보았고(7:21), 다윗은 목욕 중인 아름다운 여인을 보고 그녀를 원했다(삼하 11:2-3)”(바톤 외, 76). 결국 안목의 정욕은 눈을 통해서 추구하게 되는 죄악된 욕망입니다(제자원, 412).

 

이생의 자랑

이생비우(βίου)’로 그 원형 비오스(βίος)’는 인간의 생명을 통칭하는 표현이지만, 성경에서 조에(ζωή)’와 대조되는 개념으로 사용되어 하나님과 관계없이 살아가는 일상적인 삶을 의미(15:30; 딤후 2:4)합니다(제자원, 413).

자랑알라조네이아(ἀλαζονεία)’로 정당한 이유와 근거가 없는 헛된 자랑’, ‘교만’, ‘위선을 의미합니다(제자원, 412). 신약 성경에 알라조네이아는 총 두 번 나오는데, 4:16에서는 허탄한 자랑으로 번역되었습니다(제자원, 412). 결국 이생의 자랑은 하나님과 관계없는 인생에 대한 자랑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제자원, 413). 일부 역본들은 이생의 자랑소유에 대한 자랑으로 번역했습니다(바톤 외, 76). 그러나 이생의 자랑을 소유에 대한 자랑으로 한정하여 재산을 자랑하는 것등으로 제한하여 해석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나에게 중요하고 나 자신의 정체를 정의하는 모든 지위적 상태를 반영한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바커, 226).

우리들 마음 깊은 곳에서 얼마나 많은 것을 자랑하려고 합니까?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갑니다.

우리들이 기억할 것은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길어나 70, 80을 살다가 죽습니다. 오늘날 생명이 연장되어 90, 100을 사는 사람들도 많지만 여전히 죽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이 인생에서 욕심, 즉 탐욕으로 우리들이 누리고 싶고 가지고 싶고 성취하고 싶은 것들을 추구하고 노력하여 얻는다고 하더라도 그것들은 우리들이 죽음과 동시에 그 탐욕들도 멈추고 됩니다. 마치 우리들이 천 년, 만 년 살 것같이 추구했던 모든 것들이 결국은 허망하게 끝나고 말 것입니다.

일 중독자는 만족하지 못하고 죽을 것이다. 탐욕스런 정치인은 절망한 채 죽을 것이다. 쾌락에 몰두해 파티를 즐기는 사람들은 마약이나 술로 황폐해진 삶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탐닉은 결코 만족되지 않는다. 다만 욕구를 더욱 자극할 뿐이다”(바톤 외, 78).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결국 시간의 흐름 속에 이 땅에서의 삶은 마치게 됩니다. 과정일 뿐입니다. 그 과정은 하나님의 뜻대로 살았느냐라는 시험을 보는 시간입니다. 하나님과 동행하였느냐라는 질문에 답하는 과정일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들을 하였는가란 질문에 답하는 인생여정일 뿐입니다.

이 과정을 잘 마친 사람은 영원히 하나님과 함께 살 것입니다.

세상과 교제하며 세상의 것을 취하고 갈망하고 자랑하는 자들은 결국 하나님의 기억에서 사라집니다(제자원, 414). 그들의 인생은 덧없이 지나갑니다. “이 세상은 지나가기에, 세상과 세상이 주는 어떤 성취에 매달리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바톤 외, 78). “그러나 죄악된 세상에서 돌이켜 하나님을 붙잡는 것은 영원을 붙잡는 것을 의미합니다(바톤 외, 78).

 

 

 

참고문헌

제자원. 옥스퍼드 원어성경대전 야고보서․․요한서신유다서. 제자원 편. 서울: 제자원, 2006.

변종길, “요일 2:3~27 : 너희는 주 안에 거하라”. 요한일삼서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개정판]. 목회와신학 편집부 편. 서울: 두란노아카데          미, 2009: 27-46.

Barker, Glenn W. 1, 2, 3 John in Hebrews through Revelation. 엑스포지터스 성경 연 구 주석 : 야고보서, 베드 로전후서, 요한 1,2,3, 요            한계시록. 서울: 기독지혜사, 1985.

Barton, Bruce B., Osborne, Grant R., Veerman, David R. 1, 2, 3 John. 전광규 옮김, LAB 주석 시리즈 요한123 . 서울: ()한국성서유니            온선교회, 2007.

설교자 김태완 목사
설교일 20220130
본문 요일 2: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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