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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9월 5일 주일오전예배_아마겟돈

 

 

 

아마겟돈

 

생명교회 김태완 목사

 

 

16:12 또 여섯째 천사가 그 대접을 큰 강 유브라데에 쏟으매 강물이 말라서 동방에서 오는 왕들의 길이 예비되었더라

16:13 또 내가 보매 개구리 같은 세 더러운 영이 용의 입과 짐승의 입과 거짓 선지자의 입에서 나오니

16:14 그들은 귀신의 영이라 이적을 행하여 온 천하 왕들에게 가서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큰 날에 있을 전쟁을 위하여 그들을 모으더라

16:15 보라 내가 도둑 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16:16 세 영이 히브리어로 아마겟돈이라 하는 곳으로 왕들을 모으더라

 

 

 

안녕하세요. 형제, 자매님들 한 주간 어떻게 사셨습니까?

우리가 사는 세상이 현재 어떻다고 생각하십니까? 누구는 살만하다고 생각하실 것입니다. 누구는 정말 살만한 세상이 아니라고 생각하실 것입니다. 그렇게 말한 이유는 다 다르고 기준도 다를 것입니다.

최근에 할머니에게 담배 심부름을 시킨 십대들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 사건을 접하면서 공분을 느끼셨을 것입니다.

4명의 10대 청소년이 이 사건에 가담했습니다. 한 때 철 없는 행동이길 바랍니다. 그들이 이 악행에서 돌아서길 기도합니다. 이 악행에 우리들은 당연히 분노해야 합니다. 그리고 다시 이런 사건들이 발생하지 않도록 우리들이 할 수 있는 노력들을 해야 할 것입니다. 할머니 머리를 국화 꽃으로 때리면서 "아니 담배 사줄거야 말거야, 그것만 딱 말해."

할머니는 그 자리를 피합니다. 그러나 막아섭니다. 그러면서 계속 괴롭힙니다. 그 자리를 떠나 도로를 가로질러 가는 할머니를 쫓아가서 손수레를 걷어차기도 합니다. 남학생 2, 여학생 2명이 가담했는데, 그 중 한 여학생은 이런 말을 합니다. "아 어떡해 XX. 야 차와. 숙자야! 차 온다고. 숙자야 죽으면 안돼!“

어떻습니까? 이들의 행동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점은 무엇입니까? 단순하게 비행 청소년의 문제라고 넘어갈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평범한 학생들에게 어른 공경의식이 점점 사라지고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왜 이것을 알 수 있냐면 학교가 무너졌다는 말들을 이미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공경의 문제는 학생들에게만 그 책임을 물을 수는 없습니다. 그 부모들에게 문제가 있겠죠. 그리고 선생님들에게도 문제가 있었겠죠. 우리나라 가정이 무너지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렇게 가정이 무너지기 시작하고 어른 공경의식이 약해져 간다면 그 사회와 나라가 좋은 방향으로 나가고 있다고 말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래서 이 문제를 우리들은 심각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습니다.

https://imnews.imbc.com/replay/2021/nwdesk/article/6297489_34936.html

https://www.sedaily.com/NewsView/22QEHQK5MW

https://imnews.imbc.com/replay/2021/nwdesk/article/6296802_34936.html

 

 

오늘 본문을 통해 아마겟돈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여섯재 천사가 그 대접을 큰 강 유브라데에 쏟습니다. 그랬더니 강물이 말라서 동방에서 오는 왕들의 길이 예비됩니다.

유프라테스는 이스라엘이 약속받은 땅의 경계선이었습니다(이광진, 설교자를 위한 요한계시록 주석, 453). 그리고 유프라테스는 로마제국과 동쪽 제국들 사이의 경계이기도 합니다(LAB 주석 요한계시록, 289).

여섯재 대접 심판은 여섯째 나팔 심판과 어느 정도 평행을 이루고 있습니다(BECNT 요한계시록, 740). 본문에서 유프라테스가 마른 것과 이스라엘이 홍해가 마른 것은 평행을 이루는 이적입니다(BECNT 요한계시록, 741). 그리고 40년 광야 생활을 마치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위해 요단을 건넜던 것(3:14-17)을 상기시킵니다(옥스퍼드원어성경대전 요한계시록 제12-22, 273). 또한 이사야는 홍해를 건넌 것처럼 마지막 때가 되면 유브라테스가 마르고 남은 자가 원수들을 피해 안전하게 건너가게 하실 것이라는 예언을 전했는데(11:15-16; 50:2; 51:10), 이 예언은 고레스가 유브라테스 강물의 흐름을 다른 데로 돌리고 강을 건너 바벨론을 멸망시켰을 때 성취되었습니다(BECNT 요한계시록, 741).

동방의 왕들은 누구인가? 이에 대해 다양한 견해가 있는데, 오즈번(Grant R. Osborne)이 분류한 견해들은 이렇습니다(BECNT 요한계시록, 741).

1. 일부 학자들(월부드, 사이스, 토머스)은 이것을 문자적으로 취해 동방 왕들의 연합군이 온 천하 왕들에게 가서 성도들을 박해하는 일에 가담할 수 있도록(16:14) 유프라테스 강이 실제로 마른 것을 가리키는 것으로 봅니다.

2. 포드와 칠턴은 이것을 파르티아 군대가 로마를 침략한 역사적 사건을 가리키는 것으로 봅니다.

3. 다른 학자들(찰스, 비슬리-머리, 크로델, 마운스, 기센)은 파르티아 군대를 이에 대한 배경으로 보지만 동방에서 오는 왕들은 온 천하의 왕들과 맞서 싸우러 가고, 이것은 17-18장의 음행한 로마제국의 멸망을 준비하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4. 비일은 고레스와 그의 동지인 동방에서 온 왕들이 온 천하의 왕들에게 가세하고(16:14), 이후에는 곡과 마곡이 가담함으로써(20:8) 초림과 재림 사이에 있을 화들에 대하여 묘사한 것으로 보고 이 심상을 세계화합니다.

동방의 왕들에 대해 이렇게 분류하면서 오즈번은 동방에서 오는 왕들이 온 천하의 왕들과 연합해서 아마겟돈 전쟁을 준비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더 낫다고 합니다(BECNT 요한계시록, 742). 그리고 그는 에스겔 38-39장 곡과 마곡이 하나님의 백성들에 맞서 싸우는 것이 배경을 형성한다고 봅니다(BECNT 요한계시록, 742). “이런 의미에서 유브라데 강이 마르는 것은 홍해가 마르는 것과는 정반대 의미로, 성도들이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공격을 받는 것을 가리킵니다(BECNT 요한계시록, 742). 이에 대해 이광진은 3의 견해를 따르면서 요한이 유프라테스 강물을 마르게 한다는 표현을 사용한 것은 그리스도인들의 적을 무찌르기 위해 파르티아 군대로 하여금 로마로 갈 수 있는 길을 열어주기 위해서라고 볼 수 있다라고 합니다(이광진, 454).

 

개구리 같은 세 더러운 영이 나옵니다. 그 영의 특징은 용의 입과 짐승의 입과 거짓 선지자의 입에서 나온다는 것입니다. 용과 짐승과 거짓 선지자는 적삼위일체’, ‘악의 삼위일체’(LAB 주석 요한계시록, 290), ‘사단적 삼위일체’(옥스퍼드원어성경대전 요한계시록 제12-22, 276), ‘거짓 삼위일체(BECNT 요한계시록, 742) 등으로 불리워집니다.

고대 세계에서 은 왕의 선포를 상징했습니다(BECNT 요한계시록, 743). 거짓 선지자는 적그리스도의 선전부장으로 불렸고(브루스), 그래서 이 세 더러운 영들은 적그리스도의 선전 도구 입니다(BECNT 요한계시록, 742).

그들을 개구리 같은으로 표현한 이유는 이집트 사람들에게 부활과 다산의 여신인 헥트(Heqt)’로 상징되었지만(엑스포지터스 성경 연구 주석 약벧전요한123, 487), 율법의 정결 규례상 개구리는 부정한 동물로 분류되어(11:10) 더러운 영과 관련됩니다(옥스퍼드원어성경대전 요한계시록 제12-22, 276).

이 적그리스도의 선전 도구인 개구리 같은 세 더러운 영귀신의 영이다. “귀신들은 타락한 천사들로, 사탄이 하나님께 반역할 때에 그에 가담했었고 지금은 사탄의 지배하에 있는 악한 영들이다(LAB 주석 요한계시록, 290).

이 귀신의 영들은 이적을 행합니다. 그 이적은 불이 하늘로부터 땅에 내려오게 하는 것과 같은 이적(13:13)일 것입니다. 이들의 이적은 땅에 거하는 자들을 미혹하여’(13:14) 그들을 멸망시키는 이적입니다. 그러므로 이적의 여부가 진리와 거짓에 대한 분별의 기준이 될 수는 없습니다(옥스퍼드원어성경대전 요한계시록 제12-22, 277-8).

이 귀신의 영들이 활동하는 목적은 전쟁을 위하여 온 천하 왕들을 모으는 것입니다(BECNT 요한계시록, 744). 이 전쟁은 아마겟돈전쟁(16:16)입니다(BECNT 요한계시록, 744). 이 전쟁은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큰 날에 벌어지는 것으로 정해져 있습니다. “전능하신 이의 큰 날주의 날이라고 불립니다. 성경에서 주의 날이라는 말은 서로 다른 두 가지 면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LAB 주석 요한계시록, 291). 1. 종말(end times: 그리스도의 탄생으로 시작하여 지금가지 이어지는)을 의미할 수 있습니다. 2. 시간의 마지막에 있을 최후의 심판을 의미할 수 있습니다.

 

15절 보라 내가 도둑 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본문은 계시록의 칠복 중 셋째 복입니다(LAB 주석 요한계시록, 291). 본문은 사데 교회와 라오디게아 교회에 보내신 경고와 관련이 있습니다.

본문을 도둑맞지 않도록 옷을 잘 지키는 사람들을 가리킨다고 말하는 일부 견해(패러, 마운스)가 있지만, 그리스도의 재림을 대비해 깨어서 온전히 옷을 입고 있는 사람을 묘사한 것으로 보는 해석이 더 적절합니다(보캄, 비일)[BECNT 요한계시록, 745].

 

히브리어로 아마겟돈이라 하는 곳

아마겟돈의 원어는 하르마게돈으로 축자적으로 번역하면 므깃도의 산입니다(이광진, 457). 그러나 므깃도에 산은 없습니다(BECNT 요한계시록, 746). 그래서 다양한 견해가 있습니다. 오즈번이 분류한 다양한 견해는 다음과 같습니다(BECNT 요한계시록, 746-47).

 

1. 지리적 위치에 기반을 둔 해석

1) 아마겟돈은 평원을 둘러싸고 있는 언덕들을 비롯하여 므깃도와 갈멜산을 망라한 포괄적인 지역을 가리킵니다(페러, 세어, 칠턴). 그러나 아마겟돈은 이처럼 협소한 지역보다 훨씬 더 넓은 지역을 가리키고, 이 견해에 대해서는 증거가 너무 빈약합니다.

2) 아마겟돈은 해발 21미터 높이에 세워져 있었으므로 문자 그대로 므깃도를 가리킵니다. 따라서 아마겟돈은 역사상 최후의 전투가 벌어질 실제 장소를 가리킵니다(월보드), 토머스는 이 두 견해를 결합시킵니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점은 본문에 묘사된 규모의 군대가 그토록 크게 제한된 지역에서 어떻게 전쟁을 치를 수 있겠는가에 있습니다.

3) 아마겟돈은 므깃도 근방의 갈멜 산을 가리키고, 따라서 이곳은 종교에 대한 언급입니다(Lohmeyer). 하지만 이처럼 교묘한 지칭에 대하여 아무 지식이 없던 아시아 사람들에게는 너무 모호하고(존슨), 갈멜 산은 성경에서 므깃도 산으로 불린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Krodel).

4) 아마겟돈은 느슨하지만 이르 메기돈’(므깃도 성읍)에서 나온 이름입니다. 따라서 이 호칭은 산이 아니라 도시 자체를 가르킵니다(찰스, 아우내). 그러나 이 견해 역시 막연한 가능성에 불과한 추측입니다.

 

2. 어원에 기초를 둔 해석(아마겟돈을 히브리어에서’ 9:11의 무저갱의 사자에 대하여 사용하는 것과 비슷한 상징으로 취함)

1)아마겟돈이라는 말의 배후에는 히브리어 하르 모에드’(집회의 산)가 있고, 따라서 이사야서 14:12-14에서 바벨론 왕이 오만하게도 오르려고 하는 시온 산 또는 하나님의 보좌를 가리킵니다(리시, 보링, 로스비, 예레미아스, TDNT, 키네). 그러나 이 견해는 사본의 증거가 전혀 없이 본문을 수정할 것을 요구합니다.

2) 아마겟돈은 뒷부분의 ‘~마겟돈의 히브리어 어원 곧 가다드를 가리킵니다. 이 말은 명사 형태로 하르’()와 함ㅁ께 사용되어 황폐한 산또는 예레미야가 약간 변형시킨 멸망의 산’(51:25)으로, 바벨론의 또 다른 이름을 가리키거나(케어드, 키들, 라론델) 또는 전쟁을 위하여 군대로 모이는(가다드의 이차 의미)으로, 최후의 전쟁을 위하여 만국이 모이는 것에 대한 추가 인유로 취할 수 있습니다(존슨).

3) 본문 배후에 있는 어원은 약간 훼손되었고, 실제 히브리어는 하르 미그도’(비옥한 산) 곧 예루살렘을 최후의 전쟁의 무대로서 가리키는 것입니다(3:2; 14:2). 찰스는 팔레스타인에서 벌어질 최후의 전쟁을 위하여 이것을 에스겔서 38:8, 2139:2, 4, 17의 곡과 마곡에 대한 배경과 연관시킵니다(20:8-10을 보라).

4) 아마겟돈은 막연하지만 고대 신화 속에 등장하는 산과 함께 신들의 전투 신화와 연계되어 있습니다(Gunkel).

 

이렇게 오즈번은 견해들을 분류하면서 문자적이든 상징적이든 아마겟돈의 구체적인 의미를 찾으려고 시도하는 이 모든 견해는 확신을 주지는 못하고 있다라고 말합니다(BECNT 요한계시록, 747-48). 그러면서 그는 구약 성경에서 전쟁과 관련된 지역으로 언급되고 있는 므깃도와 관련성에 기초를 두고, 포괄적인 지역을 가리키려는 의도가 있다고 보는 것이 더 낫다(로제, 비슬리-머리, 기센, 마운스)”라고 주장합니다(BECNT 요한계시록, 748).

 

옥스퍼드원어성경대전은 아마겟돈은 전능하신 하나님에 의해 모든 악의 세력이 멸절될 것에 대한 상징으로 사용된 것으로 언급하면서 “‘아마겟돈을 단순히 므깃도의 산이나 므깃도의 성과 관련시켜 해석하는 것보다 아마겟돈그 자체가 종말에 이 세상의 모든 왕들이 집결하는 곳으로 상징된 예루살렘 성 밖의 최후 격전지에 대한 사상을 계승한 것으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3:2; 12:11; 14:2, 3)”라고 주장합니다(옥스퍼드원어성경대전 요한계시록 제12-22, 281).

 

이광진은 요한계시록의 하르마게돈은 구약의 두 모티브 즉, 잘 알려진 전쟁터였던 므깃도와 곡이 이스라엘의 산위에서 싸운다는 신화적 전투 이야기의 결합된 표현으로 볼 수 있다라고 이해합니다(이광진, 457).

 

본문을 통해 아마겟돈이 구체적으로 어디인지 알기는 어렵습니다. 오즈번과 옥스퍼드원어성경대전, 그리고 이광진 등이 본문의 아마겟돈을 잘 이해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므깃도와 관련되고, 곡이 싸우는 이스라엘 산과 관련된 장소로 이해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우리들이 생각해 볼 것은 본문에 나오는 최후의 전쟁인 아마겟돈전쟁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입니다. 이 최후의 전쟁을 물리적인 전쟁으로 이해해야 하는가 아니면 영적인 전쟁으로 이해해야 하는가입니다. 이필찬은 이 본문을 대하면서 우리는 제3차 세계 대전이니 4차 세계 대전이니 하는 낭설에 현혹되지 말아햐 한다. 그것은 대() 영적 전쟁이다.”라고 주장합니다(이필찬, 요한계시록 어떻게 읽을 것인가, 110).

옥스퍼드원어성경대전도 영적 전쟁으로 이해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용과 두 짐승으로 대변되는 사단적 삼위일체의 종말론적 대전쟁은 분명히 벌어지는 실제 전쟁이 아니라 임금들이 집결하는 것 등은 결코 물리적인 사건이 아니라 종말에 발발할 영적 전쟁을 상징적으로 묘사한 것일 뿐이다.”(옥스퍼드원어성경대전 요한계시록 제12-22, 280).

LABC비록 실제 위치는 불분명하지만, 우리는 어떤 일이 일어날지에 대해 듣고 있다. 전 세계가 한편이 되리라는 것을 제외하고는, 이것은 참으로 세계전쟁이 될 것이다. 그들은 함께 하나님을 대적하여 싸우러 모일 것이다.”라고 주장하면서 어떤 사람들은 전 세계가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을 대적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라고 언급합니다(LAB 주석 요한계시록, 293).

 

LABC의 견해가 아마겟돈 전쟁을 잘 이해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최후전쟁은 영적 전쟁일 수만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늘의 전쟁이 아닌 땅에서 이루어지는 전쟁이며, 사람들이 그 중심에 있는 전쟁으로 이해되기 때문입니다. 물리적인 전쟁으로 이해되는 이 전쟁에서 어떤 사람들이 주장하듯이 이스라엘이 중요한가를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을 본문까지 살펴보면서 이스라엘을 특별히 강조하는 부분은 없었습니다. 물론 이스라엘을 중요시하는 해석은 존재합니다. 그러나 성도들을 향한 메시지로 이해한다면 이스라엘의 중요성과 강조는 사라집니다. 요한계시록을 통해서는 이스라엘이 강조될 이유가 전혀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구약에 나오는 예언들을 깊게 연구할 필요는 있습니다. 본문과 연관된 에스겔 38-39장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연구할 필요가 있습니다.

 

신약을 통해 볼 때, 이스라엘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구원자로 영접하지 않는다면 그들에게 구원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가 오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이 울법을 완성했기 때문에 지금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구약의 방식대로 제사를 드린다고 하더라도 그들에게 구원은 없습니다. 구약의 제사법이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로 완성되었기 때문에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10:10, 19). 구원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주어지기 때문에 이스라엘 사람들도 예수 그리스도를 구원자로 영접해야 합니다. 다만 구약의 약속이 이스라엘에게 유효하기 때문에 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구원자로 영접하는 그 구원의 길로 인도하는 하나님의 섭리가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렇게 이해하기 때문에 본문에서 아마겟돈 전쟁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은 이스라엘과 세상 나라와 사탄의 세력이 싸우는 것으로 생각되지 않습니다. 아마겟돈 전쟁은 하나님과 성도들과 사탄과 세상 나라와의 전쟁으로 이해됩니다. 그러나 성도들은 사실상 전쟁할 능력이 되지 않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왜냐하면 짐승의 표를 거부한 상태이기 때문에 세상의 모든 문명혜택에서 제외될 것으로 이해되기 때문에 전쟁을 수행할 군대와 무기 등에서 짐승의 표를 받은 세상 나라와 사람들에게 절대적으로 약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 전쟁은 하나님께서 친히 싸우시는 것이지 성도들이 무엇을 해서 승리하는 전쟁일 수 없습니다.

설교자 김태완 목사
설교일 20210905
본문 계 16: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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